[최성환 칼럼]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현실로? .. '국민, 기업, 미래' 중심으로 새판 짜라
2020-02-22 09:32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를 기록했다. 그나마 정부가 막판에 대규모 재정을 퍼부은 결과였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성장률 통계를 내놓기 시작한 1954년 이후의 흐름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상당히 심각하다. 1954년 이후 2010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경우는 단 두 차례(2차 오일쇼크의 여파로 1980년 -1.6%,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8년 -5.1%)뿐이었다. 0~3%대 성장률을 기록한 해도 1956년 0.6%(농작물 흉작), 2009년 0.8%(글로벌 금융위기) 등 몇 년에 한번 정도로 드물게 있는 경우(2010년까지 57년간 총 7회)였다.
그러나 2011년(3.7%)부터 작년까지는 9년 연속 2~3%대 성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전에는 2년 연속 2~3%대 성장을 겪은 경우도 없었다. 어떤 이유로건 마이너스 또는 2~3%대 성장을 한 다음 해에는 성장률이 크게 뛰면서 곧 바로 회복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라는 예상 외의 변수가 터지면서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올해 성장률 2% 달성이 물 건너가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 경제는 10년 연속 2~3%대 성장, 3년 연속 1~2%대 성장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난 1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전미경제학회(AEA)에서의 화두는 전 세계적 ‘일본화(Japanification)’였다. 잃어버린 10년이 20년, 30년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어려운 구조적 장기침체가 일본을 넘어 유럽과 미국 등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우리나라가 바로 이 같은 우려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4%로 1966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대로 떨어진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8%)과 메르스 사태가 터졌던 2015년(0.7%)에 이어 세 번째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무상복지 확대와 농산물 공급 과잉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었다지만 소비가 위축된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 안팎이 되리라는 전망이나 코로나19 사태가 악화∙장기화될 경우 0% 중반 또는 그 아래도 가능하다.
여기다 일본이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로 꼽고 있는 고령화 역시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사회(총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 7% 이상)로 진입한 이후 18년 만인 2018년에 고령사회(14% 이상)로 진입했다. 이어서 초고령사회(20% 이상)는 불과 7년 만인 2025년에 진입할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일본의 각각 24년, 11년에 비해서도 더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다. 더욱이 합계출산율(2018년 0.98명)이 유례없이 낮아지고 있어 고령화 추세는 더 빨라질 전망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무엇 하나 나은 게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둔화에다 주력 산업의 부진, 소비 위축, 고령화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가운데 코로나19의 충격이 확대될 경우 우리 경제가 버텨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넘어지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막연하게 괜찮을 것, 우리나라는 다를 것이라는 ‘비이성적 낙관주의(irrational optimism)’는 우리 경제와 후손들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난 후 최근 10년을 ‘대한민국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명명할 수도 있다. 잃어버린 10년에 이어 앞으로 다가올 10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즉 ‘잃어버릴 10년’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근본적 원인은 뒤로 감춘 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설프고 비겁한 임시변통의 회피수단일 뿐이다. 이번 위기를 경제정책의 접근방식 및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 이상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서 함께 먹고살 것인가를 화두로 놓고 ‘국민, 기업, 미래'를 중심으로 신속하고 과감하게 새 판을 짜는 것이다.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