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낭떠러지서 부활한 바이든 '코로나19' 복병도 넘을까
2020-03-15 15:08
美 대선판 지각변동
1992년 초 빌 클린턴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초반 부진을 떨쳐내고 선두권으로 올라서자 언론은 그에게 ‘컴백 키드(the Comeback Kid)'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번 미국 대선의 민주당 유력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그런 닉네임이 어울릴 듯하다.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열린 초반 2곳의 레이스에서 굴욕적인 성적을 내며 낭떠러지로 굴러가는 ‘빈 깡통 (empty tin can)’ 취급을 받던 바이든 전 부통령. 지난 3일 14개 주 경선이 걸린 ‘슈퍼 화요일’에서 화려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그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제치고 선두주자로 올라서자 CNN은 ‘역사적이고 믿을 수 없는 컴백“으로 묘사했다. 이날 바이든 전 부통령은 연단에 올라 주먹을 치켜들며 “며칠 전까지 언론은 우리가 죽었다고 했지만 우리는 살아있다”라고 외쳤다. 지지자들은 “나가자 조(Let's go Joe)!"를 연호하며 승리의 축제를 만끽했다. 바이든은 일주일 후 6개주 경선이 걸린 ‘미니 화요일’에서도 승리하며 '대세론’ 굳히기에 들어갔다.
코로나 사태로 트럼프 재선가도에 빨간 불
이번 달 들어 미국 대선판을 흔드는 중대 변수가 생겼다. 하나는 바이든이 펼친 민주당 경선에서의 대역전극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재선 가도의 최대 복병이 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이다. 몇주 전까지만 해도 10여명의 경선 후보가 난립하던 민주당은 바이든과 샌더스의 양자대결로 압축되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조치에 비난이 가열되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자신의 경제적 성과를 내세우며 자신만만해 하던 트럼프는 혹독한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유세에서부터 기부금 모금 행사 등이 조정되거나 연기되고 선거운동 방식도 온라인으로 유권자를 찾아가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공중 보건 문제가 이미 이번 대선에서 최대 쟁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 주요 언론은 코로나 난국이 민주당 내에서 '대세론 날개'를 단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현직 대통령 대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에서 가진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 조치가 한심할 정도로 미흡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불행히도 이 바이러스는 현 행정부의 심각한 결점을 드러냈다"며 "대중의 두려움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 부족으로 인해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염병 사태에 대한 전면적인 "국가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광범위한 무료 검사, 주(州)마다 10곳의 이동식 검사소 및 드라이브 스루(승차 진료) 시설 구축, 발병 피해를 본 모든 사람에 대한 비상 유급휴가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美 언론은 이날 바이든의 연설과 코로나 사태를 가볍게 보다가 11일 밤 부랴부랴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유럽국가의 입국제한 조치를 발표한 트럼프와 대조 시켰다. CNN은 바이든의 이날 연설이 차분하고 합리적이며 미국 대통령의 전형적(classic) 연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샌더스 상원의원도 12일 연설에서 트럼프가 "무능하고 무모한 정부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번 위기가 자신이 주장해온 의료 개혁인 '메디케어 포 올(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의 필요성을 증가시켰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재선 캠프는 성명을 내고 바이든에게는 코로나19 사태를 '정치화'하고 있다고, 샌더스에게는 '잘못된 처방'을 내놓았다고 반박했다.
현재 진행 중인 민주당 경선은 중도진영과 진보진영의 싸움이다. 바이든의 대역전극은 초반 레이스에서 1위를 달렸던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 카드로는 트럼프를 물리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분열되었던 중도 후보자들 간에 ‘반(反)샌더스’ 전선이 형성된 결과이다. ‘슈퍼 화요일’을 앞두고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밴드 시장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경선을 포기하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반면에 수억 달러를 쓰고도 14개주 동시 경선에서 한 곳도 못 건진 마이클 블룸버그 후보도 경선 이후 하차했다. 경선이 2파전으로 압축 된 후 첫 진검승부인 ‘미니 화요일’에서 샌더스는 지난 2016년 경선 당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해주었던 미시간주에 올인했다. 그러나 이곳에서마저 바이든에 패배하면서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로 대세는 기울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스트벨트(쇠락한 제조업 지대)로 꼽히는 미시간주는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부를 좌우할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의 하나이다.
하지만 중도 후보들의 줄줄이 사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내 중도 표심이 바이든에게 향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도 있다. 기본적으로 바이든은 과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트럼프 이전의 "정상적인" 오바마 행정부 시절로 미국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반면 샌더스는 당의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앞으로 두 사람이 물러서지 않는 결전을 이어간다면 4년 전 민주당 경선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샌더스 후보의 돌풍에 상처를 크게 입은 후 본선에 가서 당을 제대로 결집시키지 못하고 트럼프에 패배하는 쓴맛을 보았다.
美정치 전문가들은 바이든(77)의 가장 큰 약점으로 젊은층,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기가 없다는 점을 꼽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지만 바이든은 노회한 구정치인 이미지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그가 고령이라서가 아니다. 78세인 샌더스는 그보다 나이가 한살 더 많다. 그가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유권자들의 취향과 욕구를 충분히 자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본선에 나가더라도 트럼프와 흥미진진한 싸움을 펼치며 승리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항상 의문부호가 따라 다닌다. 또한 외아들 헌터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연루 의혹, 거듭된 말실수 등도 약점으로 꼽힌다. 공화당에서는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그의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바이든은 최근 부인 질 여사(69)를 “내 여동생”, “슈퍼 화요일‘을 ”슈퍼 목요일“이라고 칭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질 여사는 ’바이든의 특급 보디가드‘로 불린다. 유세장을 난입해 바이든을 습격하려는 시위대를 맨몸으로 저지하고 ’격퇴‘시킨 덕분이다.
바이든의 비극적인 가족사 ..미국인 표심 잡나
36년 동안이나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을 역임하고 오바마의 러닝 메이트로 8년간 부통령을 지낸 풍부한 국정 경험은 그의 최대 장점이다. 그의 화려한 경력 이면에는 비극적인 가족사와 역경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아일랜드계로 펜실베이니아와 델라웨어 두 지역에서 터를 닦은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델라웨어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시라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1972년 29살의 젊은 나이에 공화당 거물을 꺾고 처음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해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러 나가다 교통사고로 첫 번째 부인 네일리어와 13개월 난 딸을 잃었다. 같은 차에 있던 장남 보 바이든(전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은 생명을 건졌지만 바이든은 다음해 아들의 병상 옆에서 상원의원 취임선서를 했다. 1988년에는 자신이 뇌동맥 파열로 사경을 헤매다 7개월 만에 재활해 상원의원에 복귀하기도 했다. 또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에 나섰다가 두차례 (1988년, 2008년) 중도하차 했다. 2015년에는 아들 보 바이든이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대선 출마설이 나돌던 바이든은 아들의 사망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016년 대선 경선에 불출마 한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엄청난 슬픔과 싸워온 그가 이번 경선에서 초반 참패의 굴욕을 극복하고 일어서 힘차게 부활하는 모습에 많은 미국인들이 박수를 보내는 듯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선 지형이 급변하는 가운데 샌더스가 역전극을 펼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가 지나치게 급진적이긴 해도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의 폭넓은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진보 성향의 젊은 세대로부터 다양한 인종과 계층으로 지지층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현재로서 2016년의 힐러리 후보처럼 바이든이 과반수인 1991표를 획득해 7월 밀워키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그가 최종 후보로 결정이 된다해도 좌절한 샌더스의 지지자들을 바이든의 품안에 끌어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바이든의 운명은 샌더스와 그의 열렬한 지지자를 얼마나 잘 설득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샌더스가 일찍 중도포기하며 바이든이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 있도록 도와줄 성싶지는 않다. 그는 최근 유세에서 “우리는 과거의 구식 정치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절대다수가 우리의 진보 의제를 지지한다”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초반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처럼 되살아난 바이든의 대권 도전은 전 세계의 관심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바이든을 비판하거나 견제해왔다. 지난해 벌어졌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트럼프는 바이든 부자의 이권개입으로 프레임을 짜다가 탄핵의 위기까지 몰렸다. 민주당 내 다수는 바이든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의 한 축인 중서부 지역 백인 인 노동자들의 표를 되찾아 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평가한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자신의 지지세력을 잠식할 수 있는 바이든보다는 강성진보에다 확장성에 한계를 드러내는 샌더스가 수월한 상대이다. 반대로 말하면 바이든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미국 정치권이 소득 불균형, 기후변화, 대학 학자금, 망가진 의료 시스템 등 사회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도 거세다. 하지만 ‘포퓰리즘’과 ‘사회주의’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기본가치를 흔들 수 있다는 중산층 미국인들의 불안감도 상당하다. 진보 대 보수의 치열한 논쟁은 11월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판세에 따라 대선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더군다나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은 또 다른 대형 변수이다. 잘나가던 미국 경제도 위기에 빠지면서 미국인들의 표심도 어디로 향할지 안개 속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