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실리는 짧고 비루함은 길다
2020-03-10 17:01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이다.” 이 말에 공감하기 어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만 옳다는 ‘내로남불’이 아닌가 싶다. 그에 앞서 이런 상황을 초래한 책임에 대한 진솔한 사과가 선행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 연후라야 공감을 얻기도 쉽다. 비례연합정당을 고심하는 민주당 속사정을 이해 못하는 게 아니다. 정치는 현실이다. 이대로 선거를 치르면 민주당 7석, 미래한국당 27석, 정의당 13석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비례의석에서 무려 20석 차이가 난다. 민주당으로서는 안달할 수밖에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애를 써도 제1당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 1석 때문에 제1당 지위가 갈리고 국회의장직을 내놓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궁색하다. 나아가 실리도 명분도 잃는 최악을 배제하기 어렵다. 논란이 된 비례정당은 민주당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한 주역이다. 미래한국당에 대해선 ‘꼼수 가짜정당'이라고 손가락질해 왔다. 또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하니 아연할 따름이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과는 다르다고 강변한다. 미래통합당은 위성 정당을 설립한 반면, 자신들은 시민단체가 만든 비례정당에 올라타기에 다르다는 것이다. 상식 있는 이들이라면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가 정의고, 우리만 옳다는 도덕적 우월감에서 나온 판단 착오는 아닌지 되묻고 싶다. 진보정당 대표를 지낸 홍세화는 “위선은 말과 행동이 다른 게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데도 아니라고 우기는 게 위선이다”라고 했다. 물론 선거법 허점을 노린 미래한국당 행태는 낯 뜨겁다. 또 코로나19와 관련해 덮어놓고 정부를 비난하는 행태는 몰염치하다.
지난해 8월 모든 여론조사에서 조국 임명 반대는 찬성보다 2배 이상 높았다. KBS 48대18, 중앙일보 60대27, 한국갤럽 57대27이었다. 그럼에도 밀어붙였다. 내부 경고음은 희미했고, 국민 여론은 무시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35일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국민 여론은 갈렸다. 사퇴 직후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사퇴는) 잘한 결정’ 62.6%, ‘잘못한 결정’ 28.6%였다. 한국갤럽 역시 64대26이었다. 이게 밑바닥 민심이었다. 비례정당과 관련해서도 냉정해야 같은 잘못을 피할 수 있다.
광화문 시위대를 배제한 국가 경영은 가능할까. 그들 중 상당수는 박근혜 탄핵에 앞장섰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들이다. 그들을 외면한 정치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오만이다. 강준만 교수는 ‘강남좌파2’에서 “여권이 적폐로 몰아붙이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촛불 혁명에 찬성했던 동지였음을 감안컨대, 선악 이분법은 잔인하다”고 했다. 여당에는 상대를 보듬는 아량이 필요하다. 지지자들 사이에선 전 당원 투표는 비겁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자신들 잘못을 당원들에게 전가하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존재감 없던 안철수 대표를 다시 평가하고 있다. 대구·경북에서 보여준 헌신 때문이다. 또 국민들은 병원 문을 닫고 달려간 개업의부터 은퇴한 간호사, 임관하자마자 현지로 간 간호장교, 성금으로 힘을 보태는 국민들, 보름 가까이 대구에서 숙식하며 현장을 지휘하는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공직자들에게 경의를 보내고 있다. 비례의석 몇 개 더 갖겠다는 비루한 정치권과는 결이 다르다. 정치권은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대구·경북으로 내려가 시민들과 소통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기대한다면 욕심일까. 국민들은 그런 정치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 설령 미래통합당이 비례의석을 독식하더라도 그것 또한 각오해야 한다. 잘못된 역사도 역사다. 우선은 국민을 믿고 부당함을 인식시키는 데 주력하자. 실리는 짧고 치욕은 길다. 민주당만이 옳고, 민주당만이 해야 한다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녹색당, 미래당, 정의당이 원내 진입하는 게 그리 문제될 일인가. 민주당에 그런 용기는 없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