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베트남의 '방역 봉쇄', 미움과 믿음 사이

2020-03-02 08:21

 
 

 

 

[임병식 객원논설위원]]

 



수년 전, 베트남 호찌민 꾸찌 터널을 다녀왔다. 맛보기로 만든 길이 100m짜리 ‘벤딘’ 터널이다. 관광객들에게 체험 상품으로 인기였다. 터널은 입구를 찾기도 어려웠지만 내부는 상상을 초월했다. 벌레처럼 기어 다니거나 오리걸음 할 수밖에 없었다. 드문드문 불을 밝힌 백열전구가 전부였다. 고작 30m 남짓 기어 다니다 나오고 말았다. 칠흑 같은 어둠, 다시 나올 수 없다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베트콩들은 수십㎞가 넘는 이곳에 숨어 미군과 싸웠다. 때로는 터널이 무너져 생매장됐다. 기록에 의하면 터널에서 생활한 1만6000명 가운데 1만명이 숨졌다. 살기 위해 판 지옥 같은 개미굴은 거꾸로 목숨과 맞바꾼 비극의 현장인 셈이다.

베트남 국민성은 강인하다. 수많은 강대국을 상대로 싸워 이긴 역사가 그렇다. 멀리 중국부터 가깝게는 미국,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을 상대로 이겼다. 베트남 갱단을 중국 삼합회보다 높이 치는 이도 있다. 독하고 끈질긴 생명력은 굴곡진 역사에서 배태됐다. 900여 차례 침략을 받은 한민족과 상통하는 면도 없지 않다. 이런 베트남을 떨게 한 게 있다. 바로 코로나19다. 베트남 정부는 중국 우한폐렴 초기부터 국경 봉쇄와 항공기 운항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도 과감한 조치였다. 한국에 대해서도 최근 대응 수위를 높였다.

대구 경북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된 데 대한 조치다. 세계 78개국은 한국에서 출발한 입국자를 받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35개국은 가장 높은 단계인 전면 '입국 금지' 조치다. 우리에게 우방인 베트남과 터키도 여기에 가세한 것이다. 베트남은 최근 14일 이내 감염증 발생지역(대구, 경북)에서 입국하는 외국인에 대한 임시 입국 중단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 26일부터다. 한국인 무비자 입국도 중단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출발한 여객기가 하노이공항에 내리지 못한 채 되돌아갔다. 한국 정부는 사전 통보 없는 조치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한국은 베트남 최대 투자국이자 제2위 교역국이다. 베트남 역시 한국에서 제4위 교역국이라는 지위를 갖는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9000개에 달한다. 한국 교민도 20만명이다. 그런데도 강경한 조치를 취한 이유는 다름 아니다. 외교·경제보다 자국민 안전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다. 감정을 내려놓고 입장을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방역에 최우선 두는 흐름은 국제사회 기조다. 감정적 대응은 자제하고 냉정해야 하는 이유다. 입장을 바꿔 우리라면 어땠을까 ‘역지사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돈과 생명 중 선택에 관한 문제다.

베트남은 의료 수준이 열악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간단한 진단 키트조차 없는 실정이다. 베트남 정부와 국민들이 공포감을 갖는 이유다. 이 같은 취약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우리 입장만 강요한다면 ‘갑질’이나 다름없는 행동으로 비칠 수 있다. 베트남 내 코로나19 확진 환자는 0명이다. 방역에 실패할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외교부는 정세균 총리가 베트남 총리에게 항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는 게 일선 외교관들 시각이다. 만일 총리도 안 되면 그 다음은 대통령이 나설 것인지, 우려된다.

앞서 말했듯이 베트남은 세계 제1강대국과도 전쟁을 마다하지 않은 나라다. 또 경제적 불이익을 예상하면서도 중국에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물론 우리 국민 입국 금지와 항공기를 돌려보내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교와 방역은 구분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감정적이며 불필요한 대응은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 또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베트남 때리기가 여론을 돌리는 수단이어서도 안 된다. 미국, 중국에 대한 어정쩡한 대응 때문에 악화된 여론을 돌리기 위한 방편이라는 의혹이 있다.

사실이라면 위험한 발상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에게 베트남은 매우 중요하다. 박항서 감독에 힘입어 양국 관계는 우호적이다. 또 베트남은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신남방 정책에서 핵심 국가다. 무리한 압박으로 일관할 경우 양국 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 이미 현지에서는 이런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베트남연합한인회장은 1일 교민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일부에서 한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나타나고 있으며, 자칫 집단감정으로 불거져 반한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자극적인 언행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인 압박보다는 현지 대사관을 통한 대응이 바람직해 보인다. 반한감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역은 조치가 끝나면 해결되는 일시적 현상이다. 반면 외교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주한 베트남 대사관은 뜬눈으로 우리 국민 보호에 힘쓰고 있다는 소식이다. 조속한 입국 절차 진행과 함께 자가 격리를 통해 사태수습에 나섰다. 이날 미국은 대구에 대해 최고 단계인 ‘여행금지’, 나머지 지역은 ‘여행재고’ 경보를 유지했다. 다행히 베트남 당국은 강제 격리했던 한국인들을 자가 격리로 전환했다.

이 결과 지난달 28일 하노이 공항으로 입국한 한국인 73명 가운데 60명은 시내 숙소로 이동했다. 이제 베트남 전역에 격리된 한국인은 모두 223명이다. 박노완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는 “방역과 외교를 분리해야 한다. 한국과 베트남 정부가 공동 대응하도록 차분하게 지혜를 모을 때다”면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베트남은 꾸찌 터널에서 공포를 이겨내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달리고 있다. 지금 베트남에 한류 열풍이 한창이다. 한국과 베트남은 코로나19와 싸움에서 이겨낼 것이다. 그래서 한 단계 발전된 한-베 관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