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의 불온한 정치] 여전히 '빵'과 '장미'가 필요한 韓여성…"백래시에 레드카드를"

2020-03-09 17:22
'세계 여성의 날' 112년 역사…'빵(생존)과 장미(인권)' 투쟁 산물
노동 개선과 함께 '여성 참정권' 쟁취…韓여성 참정권 고작 62년
미·소 냉전해체, 페미니즘 다원화 물꼬…韓 '최영미·유하' 문학 등장
2000년대 '김치녀·한남충' 적대적 극대화…'백래시'와 '82년생 김지영'

"우리는 빵(생존)을 원하지만, '장미(인권)'도 원한다.(영화 '빵과 장미' 중)" 그날이 어김없이 지나갔다. 듣기만 해도 숙연해지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이다. 21년 전으로 기억한다.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던 '세계 여성의 날'이 가슴속을 후벼 팠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유는 모른다. 치기 어린 마음이었을까. 소싯적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여성주의 담론, 페미니즘'을 흠모했다. 군에서 휴가 나올 때마다 한걸음에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가 페미니즘을 표방한 계간지 '이프(IF)'를 보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빵과 장미'는 메타포(은유)가 아니다. 112년 전 미국 뉴욕의 비인간적 노동에 처했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 1만5000여명이 외친 실제 구호였다. 머릿속에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가사 '소금 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가 오버랩 됐다. 산업화를 위해 헌신한 우리네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빵과 장미' 투쟁은 '여성 참정권'의 역사다. 일명 '빵과 장미' 파업으로 불리는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 직물 공장 여성 노동자 시위를 시작으로, 여성 참정권 운동은 세계 1차 대전(1914∼1918년) 전후 들불처럼 번졌다. 여성들이 마침내 남성 주류 사회에 반기를 들기 시작한 셈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만국의 여성이여 단결하라'다.

◆'빵과 장미' 투쟁 부정···'여성 참정권' 역사 불인정
 

'세계 여성의 날'인 8일(현지시간) 방독면을 쓴 프랑스 파리 시민이 '가부장제 바이러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든 채 성 평등 요구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의 경우 제헌헌법 때 제8조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를 명시했지만, 여성이 참정권을 비로소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58년 '민의원 의원선거법'과 '참의원 의원선거법' 공포 때였다. 대한민국 여성 투표권의 역사는 고작 62년에 불과하다. 이런 쇼킹한 일이.

페미니즘 운동에 불을 지른 분기점은 1960년대 '정치 변혁 운동'과 1980년대 후반 '미·소 냉전 체제'의 붕괴였다.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 여성을 고발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이 나온 것도 1960년대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탈이데올로기 등이 확산하면서 문학을 통해 억압받던 여성성을 끄집어냈다. 생태주의에 머물던 문학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기점으로 여성주의 시 담론을 띄웠다.

이후 유하의 '바람 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출현을 알렸다. 일련의 흐름은 남성 권력 중심의 근대적 사유 체계를 뒤흔든 하나의 사건이었다. 금기시된 여성의 몸을 당당하게 주장한 것도 이쯤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도 비정상적으로 그려진 여성의 비루함을 그린 영화 '미저리'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요즘 어린이들도 부르는 동요 '곰 세 마리'에도 '아빠 곰은 뚱뚱하고 엄마 곰은 날씬하다'고 하지 않나. 대중문화부터 '남녀 구분 짓기'를 일삼는 동요까지, 사방이 페미니즘의 적이다.

◆생존도 인권도 벼랑 끝인 우리의 '82년생 김지영'

페미니즘 운동은 디지털 시대인 2000년대 들어 새 국면을 맞는다. 2005년 정희진의 '페미니즘 도전'이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전과는 다른 기류의 남성주의도 강화됐다. 이 주도층은 이른바 '꼰대(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나이 많은 사람)' 세대가 아닌 1030세대 등 젊은 층에도 빈번히 일어났다. 이쯤 되면 '사회 병리학적' 현상이다.
 

'멕시코 '세계 여성의 날' 시위 참가자들이 8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살해된 여성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00년대 중반 스타벅스에 가거나 명품을 즐기는 여성을 '된장녀'에 빗대 조롱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 된장녀는 '김치녀(한국 여자를 김치에 빗대 이르는 속어)' 등으로 확장했다. 여성 인권 향상으로 위협을 느낀 기득권층의 반발인 '백래시(backlash)'가 등장한 것이다.

1960년대 미국에 백인 중심의 '화이트 백래시'가 있었다면, 2000년대 한국 사회에는 '남성 백래시'가 사회 담론 안을 파고들었다. 이는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기제다.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당시 '여성 혐오냐, 조현병 환자 탓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여성들은 주말마다 대규모 마스크 시위를 벌였다. 남성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 살인이 아닌 조현병 환자의 범죄"라고 맞섰다. 여성들은 남성을 향해 "한남충(한국 남성 전체를 비하하는 속어)"이라고 배설했다.

범죄의 주체 찾기보다 더한 공포는 일종의 통념으로 자리 잡은 남녀의 적대적 구도다. '공존과 상생' 따위는 없다. '일간베스트저장소'나 '메갈리아', '워마드'는 물론, 이른바 당한 만큼 갚아주는 '미러링'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난다. '미러링' 등을 강하게 움직이는 추는 성별이 다른 타자에 대한 분노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게임 작가는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남성들로부터 '퇴출 요구'를 받았다. 여성 혐오 시대에서 분출했던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은 '성범죄 무고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남성에 둘러싸였다. 다수의 여성 연예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소감을 올렸다는 이유로 악플에 시달렸다. 일부 여자 연예인들은 관련 글을 내렸다. 사이버 공간에서조차 '남성 광기'가 판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12월 17일(현지시간)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GGI)는 전 세계 153개국 중 108위에 불과하다. 임금 평등성은 119위로 평균을 밑돈다. 남성 소득은 5만2100달러였지만, 여성은 절반 수준인 2만4800달러에 그쳤다. 고위 임원 및 관리직 비율은 142위로 최하위다. 3년 전 문재인 대통령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안아 달라"고 당부한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말이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이유는 뭘까. 문득 출산 후 복직 대신 '육아'와 '학업'을 택한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