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칼럼] '한반도생명공동체' 남북화해 첫걸음 떼는 계기로

2020-02-26 18:31

[박종철 석좌연구위원]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떨고 있다. 재난영화의 장면과 같이 텅빈 거리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모습이 일상이 되었다. 사스, 에볼라, 메르스보다 강력해진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을 역습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생명에 대한 위협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정치의 근간을 헤집어 놓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 안보는 군사적 안보나 정치적 안보만으로는 삶과 일상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깨우침이다. 인간 안보는 경제 안보·식량 안보·환경 안보를 망라하며, 여기에 건강 안보도 해당된다. 개인적 문제이자 특정 지역이나 나라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안보가 인류 모두의 문제가 되었으며, 평범한 일상이 소중한 가치로 재인식되고 있다.

온 나라가 코로나19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접경지역을 맞대고 있는 북한 상황이 강 건너 남의 일이 아니다. 북한은 아직까지 코로나19 감염자가 없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진상은 알 수 없다. 북한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1월 말 중국과의 교역을 차단하고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하며 외부세계에 대해 빗장을 걸었다. 특히 중국인의 단체관광 중단, 단둥의 비자발급업무 중단 등의 조치를 취했다. 중국과의 교역 및 관광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뼈아픈 조치이다. 최근에는 평양마라톤대회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역 시스템이 취약한 북한이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북한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북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관광수입과 해외노동자 송금으로 외화를 충당해 왔던 북한의 어려움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작년 말 자력 갱생으로 버티겠다고 다짐한 ‘새로운 길’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는 남북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강산관광의 대안으로 모색한 개별관광이 벽에 부딪혔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파를 우려하여 남북 대화의 창구였던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문을 닫았다. 매일 얼굴을 보며 회의하는 대신 전화선과 팩스로 연락을 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사태는 재난·재해 방지를 위해 남북협력이 절실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과거 남북이 보건·의료 협력방안을 협의하였으며 말라리아, 구제역, 신종플루 등에 대해 국제기구를 통해 간접적 지원을 하기도 했다. 산림병충해 방제, 수해지원 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외 연설이나 신년사 등을 통해 인간안보, 환경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재해, 재난, 환경오염, 보건·의료 등의 분야에서 남북한이 협력하여 한반도생명공동체를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18년 남북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에서 전염성 유입 및 확산 방지를 위한 보건·의료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직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2019년 타미플루 지원을 추진했으나 트럭운송이 대북제재에 저촉되어 성사되지 못했고, 작년 돼지열병에 대한 협력도 북한 측의 거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남북이 재난방지를 위한 협력을 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최근 재난·재해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남북한이 재난 협력을 해야 할 필요성은 너무나 당연하다. 남북 재난협력은 일상에서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남북한 주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 정치, 군사문제를 접어두고 인간 안보에 초점을 맞추어서 남북한이 공생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우선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방역, 치료를 위해 민간단체의 지원부터 시작해서 정부 간 협의를 추진해야 한다. 북한은 남북한 주민의 상생과 생존권 보장, 생명공동체 형성을 위한 차원에서 남북 협력에 적극 응해야 한다.

큰 틀에서 볼 때,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협력을 계기로 남북재난협력에 대한 협의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전염병 대책을 비롯한 보건·의료 협력, 병충해 방지, 환경보호 등 재난 및 재해관리를 위해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생명공동체의 형성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이념이나 군사적 대립을 넘어서 남북한 주민의 일상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실질적인 일에서부터 남북화해의 첫걸음을 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