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억대 철밥통 깨지나] "호봉제 문제 많아" 직무급제 도입 논의 활발

2020-02-26 08:00
은행권 억대 연봉자 30.1%···장기 근속자만 유리한 호봉제 비판 많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 도입을 놓고 금융권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금융 공공기관에 이어 시중은행 등 민간 금융사에서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은 국내 주요 산업 중 호봉제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이라 직무급제 도입이 확산될 경우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금융산업위원회는 지난 18일을 기준으로 활동을 마무리했다. 2018년 11월 발족한 금융산업위는 '금융산업의 발전과 좋은 일자리의 유지창출을 위한 합의문' 초안을 마련했다. 이 합의문에는 직무급제 도입을 포함한 임금 체계 개편 내용이 담겼다.

금융산업위는 노사 합의를 거쳐 이 합의문의 내용을 민간 금융사에 권고하려 했으나 금융노조 등의 반발에 부딪쳤다. 이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금융산업위의 활동이 마무리됐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급여를 다르게 책정하는 제도다. 업무의 난이도에 따라 급여와 성과의 보상이 달라지기 때문에 힘든 일을 맡은 사람에게 더 확실한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

반면 상당수 금융사가 도입한 호봉제는 근속 기간에 따라 직위가 오르고 연봉도 일정 비율로 인상된다. 맡은 업무에 상관없이 자리만 지키면 매년 급여가 오르기 때문에 사실상 능력에 관계없이 '철밥통'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 금융산업위 조사 결과 국내 14개 은행 가운데 일박 직원을 기준으로 연봉제를 채택한 곳은 1곳뿐이다. 6곳은 급과 관계없이 근무 경력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단일호봉제, 7곳은 직무의 난이도나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직급별 호봉제를 택하고 있다.

단일호봉제와 직급별 호봉제 모두 개인 실적이 좋지 않아도 근속 기간이 쌓이거나 기간에 따라 직위가 상승하면 연봉이 오른다. 이른바 '억대 철밥통'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말 기준 연봉 1억원 이상 은행원은 전체의 30.1%를 기록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임금 연공성 국제비교'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년 미만 대비 30년 이상 근속자의 임금이 약 3.3배다. 신입 직원에 비해 30년 근속자의 임금이 3배가 넘는다는 의미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영국은 1.6배로 우리의 절반도 안 될뿐더러, 독일은 2.1배, 연공서열이 철저하다는 일본도 2.5배 수준이다.

결국 철밥통 근속자에 유리한 호봉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금융권 안팎에서는 직무급제가 도입될 경우 은행원의 경쟁력도 어느 정도 제고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대규모 공채가 사라지고 52시간제 같은 새로운 근무 환경이 도입된 상황에서 직무급제 도입 등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에는 대규모 인력이 채용되고 순환 근무가 원칙이었기에 호봉제가 적합했으나 수시 채용이 활성화된 현 상황에서 호봉제의 의미가 없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호봉제를 계속 유지할 이유가 없다"며 "직무급제 도입은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반대할 이유가 없이 반드시 가야할 길"이라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