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소프트뱅크]③"기류가 바뀌었다"...소프트뱅크 악몽 끝날까

2020-02-17 08:00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기류가 바뀌었다."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을 이끄는 손정의 회장이 지난 12일 도쿄에서 열린 실적발표에서 한 말이다.

실제로 2019년 손 회장에 악몽의 한해였다. 비전펀드 투자실패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게 가장 컸다.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던 손 회장이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불명예를 안았고 2차 비전펀드 조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최근엔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이번엔 소프트뱅크를 겨냥하면서 본격적인 간섭을 예고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는 비전펀드 투자 비중이 높은 중국 기업에도 큰 타격을 미치리라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큰 호재도 있었다.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미국 통신사 스프린트이 T모바일과 합병할 수 있게 된 것. 이 소식에 소프트뱅크 주가는 12일 단숨에 12% 뛰어올랐다. 올해 기류가 바뀌었다는 손 회장의 장담이 들어맞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비전펀드 연속 적자에 코로나19까지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소프트뱅크그룹은 지난 12일 2019회계연도 3분기(10~12월)에 순익이 550억엔(약 5900억원)에 머물렀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 대비 92% 떨어진 것이다. 2분기(7~9월)에 기록한 7001억엔 적자에선 벗어났지만 이번에도 비전펀드 투자실패에 따른 거액의 손실에 발목이 잡혔다.

비전펀드는 2분기에 9702억엔 손실에 이어 4분기에도 2250억엔 손실을 기록하면서 소프트뱅크 수익을 갉아먹었다. 계속된 투자 실패와 막대한 손실은 손 회장의 펀드 운용능력에 회의론을 드리웠다. 손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2차 비전펀드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비전펀드가 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비전펀드는 약 4조엔을 출자한 외부 투자자에 매년 원금의 7%를 우선적으로 배당하는 구조다. 단순 계산해도 매년 2800억엔의 배당금이 필요하다. 소프트뱅크는 투자금을 회수해 배당금을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상장 등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어려울 경우 원금이 손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이 신문의 설명이다.

여기에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은 소프트뱅크그룹 지분을 3%까지 늘리면서 본격적인 입김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엘리엇은 삼성그룹과 현대차 등을 상대로 싸움을 벌여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엘리엇은 이미 소프트뱅크에 기업 지배구조 개선,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 투자 결정에서의 투명성 제고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 부양을 위한 최대 200억 달러어치 자사주 매입도 요구해 소프트뱅크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설상가상 중국을 중심으로 확산일로에 있는 코로나19 사태도 소프트뱅크에 충격파를 던질 전망이다. 비전펀드 투자액 기준으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0%에 달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기둔화가 본격화할 경우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지적했다.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 청신호는 호재

다만 미국 3·4위 통신사 스프린트와 T모바일의 합병이 마지막 관문을 넘어선 것은 소프트뱅크에 한숨 돌릴 여유를 줬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법원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스프린트와 T모바일을 합병을 승인했다. 앞서 두 차례 무산됐던 양사의 합병이 마침내 성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합병회사는 미국 버라이즌, AT&T와 함께 합병사 3강 체제를 구축하면서 미국 통신시장을 재편할 것으로 기대된다.

스프린트는 소프트뱅크가 2012년에 인수한 미국 통신사다. 지금까지는 스프린트는 소프트뱅크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합병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소프트뱅크도 큰 짐을 덜게 됐다. 손 회장 역시 12일 실적발표에서 "스프린트 관련 리스크는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커크 브루디 레덱스홀딩 애널리스트는 로이터를 통해 이번 스프린트와 T모바일 합병으로 소프트뱅크가 스프린트에 추가로 자금을 투입할 위험이 사라졌다면서, 합병은 "스프린트에 무척 좋은 소식이고, 소프트뱅크에는 더 좋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사진=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