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 아닌 집주인 위한 법? 30년 케케묵은 주임법
2020-02-11 14:59
# 지난해 결혼한 이진영(가명)씨는 전세로 구한 신혼집 때문에 걱정이다. 집주인이 법인세를 체납하면서 전세금을 못받고 나가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 전세권설정등기를 했지만, 국세체납액이 전세권보다 선순위이기 때문에 국세체납액에 배당금이 모두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한여름(가명)씨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주인이 기존의 전세금에서 5000만원을 더 올려주거나 집을 나가달라고 통보한 탓이다. 2년 전 재계약 당시 이미 5000만원을 올려준 한씨 입장에서는 부담이 적지 않지만, 이미 부동산 가격이 오를대로 오른 서울에서 새로운 전세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막막하기만 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주임법)이 3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어 법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1년 제정된 이후 주거약자를 위한 보호장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2월 임시국회에서도 통과가 쉽지 않아 사실상 자동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임대차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인상률 상한제 등의 도입요구가 거세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주택 전월세 임차인이 2년 임차 기간이 끝난 뒤 2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계약해지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기간제한 없이 계속 거주할 수 있는 독일이나, 계약기간을 3년으로 하되 사실상 갱신을 인정하고 있는 프랑스 등과 비교하면 보장기간이 짧아 주거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월세상승률 상한제도 현행법에서는 한계가 있다. 법에서는 계약 연장시 5% 범위에서만 전월세를 인상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계약갱신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사실상 집주인 마음대로 전세금을 올릴 수 있다. 계약 만료 후 세입자가 인상안을 받아들이면 재계약이 가능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른 세입자를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전셋값이 꾸준히 상승하면서 전세 시장 불안은 확산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최근 발표한 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종합 전세가격은 0.43% 상승했다. 이는 전월(0.38%) 대비 상승폭이 커진 것으로, 월간 기준으로는 2015년 12월(0.50%)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전셋값 상승세는 수도권(0.37→0.39%)은 물론 세종시(1.16→2.88%) 등을 포함한 지방(0.08→0.17%)에서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주임법 개정안이 통과되긴 힘들어 보인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주임법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통과가 무산되면 자동폐기되는데 임시국회 일정이 정해지기는커녕 국회가 열릴지도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임대료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되면 임차인들의 안정적인 주거 생활이 가능해진다는 점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