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위기] 사모펀드發 위기에 기업 자금조달 '비상'
2020-02-03 08:00
잇따른 사모펀드 관련 악재로 자본시장이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 처음 문제가 됐던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상품이 장기간 상환을 연기하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라임자산운용에서 촉발된 대규모 펀드 환매연기 사태도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투자자들의 손실은 물론 사모펀드를 통해 운용 자금을 조달해 온 기업들의 피해도 불가피해 보인다.
◆獨헤리티지 DLS·라임 환매연기 장기화
독일 헤리티지 DLS는 독일 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건물을 주거용으로 재개발하는 사업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현 저먼프로퍼티그룹)가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반자란운용이 펀드를 통해 대출해주고 국내 증권사들이 이를 기초자산으로 DLS를 발행한다.
판매 당시에는 안전한 상품으로 홍보되며 신한금융투자를 중심으로 판매됐다. 그러나 일부 건물에 대한 독일 정부의 개발 허가 승인이 지연되며 사업이 좌초됐다. 반자란운용과 국내 증권사들은 독일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 검사 이후 올해까지 지속적으로 진행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판매사 측에서 독일 부동산 자산을 매각해 환매하려고 하고 있으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라임운용의 환매연기 사태도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회계법인의 실사가 끝나지 않아 정확한 피해 규모도 가늠키 어려운 가운데 사모펀드 업계 전반에 ‘펀드런’(대규모 환매) 사태를 부를 조짐이다.
금감원이 나서 라임운용과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을 만나 자산 회수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독려했으나 난항을 겪고 있다. 오히려 증권사들은 중소형 운용사들과 맺은 TRS(총수익스와프)계약을 해지하는 등 자금 회수에 나서고 잇는 상황이다.
◆얼어붙은 사모펀드 시장··· 자금조달 '어쩌나'
자본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사모펀드는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기업들에게 자금줄 역할을 한다.
메자닌 전략을 구사하는 사모펀드들이 늘어나며 신용 등급이 낮아 은행 대출이나 일반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코스닥 상장사들이 CB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메자닌은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EB) 등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을 말한다. 주가 상승기엔 주식으로 전환해 매도하고, 하락장에서는 채권으로 보유하거나 상환 청구를 통해 원리금을 받을 수 있어 ‘중위험 중수익’ 투자 수단으로 각광받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CB·BW·EB 등 메자닌 발행 규모는 총 5조866억원으로 전년 대비 20.2% 증가했다. 특히 CB의 경우 4조2305억원이 발행되며 전년보다 4조2793억원으로 43.5% 늘어났다. 그러나 라임운용의 펀드 환매연기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감소 추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집계 결과 라임 사태가 터진 지난해 10월부터 연말까지 코스닥 상장 기업이 발행한 CB 규모는 1조116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5.2%, 전년 동기보다 13.3% 감소했다.
라임 등 메자닌 전략을 구사했던 헤지펀드들이 환매연기를 선언하며 자금이 빠져나간 것이다. 이미 CB를 발행한 코스닥 기업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만큼 연쇄적인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 시장이 건전성을 회복할 가능성도 있다. 메자닌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은 “일부 운용사에서 펀드에 편입한 메자닌에 대해 우리도 투자를 고려한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고객들에게 적절한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고 판단해 철회했다”며 “메자닌 자체는 문제될 게 없지만 해당 기업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무분별한 투자가 이뤄진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