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우한 안돼” 신종 코로나에 고개든 의료 님비

2020-01-29 15:44
'천안'이어 진천ㆍ아산 주민 반발…정부는 갈팡질팡

29일 오후 정부가 아산과 충북 진천에 우한 교민을 격리수용 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 정문 앞에서 농기계로 도로를 막는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과 관련해 국내 송환한 교민과 유학생들을 천안 지역에 수용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했다. 지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국내 송환하는 중국 우한 지역 교민들을 두고 ‘의료 님비(Not In My BackYard·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발생 여부를 떠나 정부와 지역사회의 상호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문제로 꼽힌다.

정부는 29일 국내로 송환되는 이들을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에 나눠 격리 수용하기로 확정했다.

정부가 천안에서 아산·진천으로 수용 계획을 틀면서 반발하면 바꾼다는 여지를 준 것도 문제다. 접촉자 격리 시설을 지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음에도 정부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접촉자 격리 시설을 지정할 수 있다. 감염병예방법 39조는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감염병환자등의 접촉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거나 지정된 접촉자 격리시설만으로 접촉자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접촉자 격리시설로 지정되지 아니한 시설을 일정기간 동안 접촉자 격리시설로 지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법을 두고도 갈팡질팡하는 정부를 꼬집었다. 김상욱 한국법조인협회 이사(변호사)는 “이번 사안은 전형적인 님비에 해당한다”면서 “설득할 시간과 자원이 부족하니 감염병예방법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일방 지정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익 대륙아주 변호사는 “반발이 심해서 아산, 진천으로 옮긴 것은 좀 부적절했다”며 “아산, 진천 또한 반발이 심하면 또 옮길 것 인지 묻고 싶다. 의료 님비라고 본다”고 밝혔다.

전정환 변호사도 “(해당 지역의)반발로 다른 지역으로 간다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반발하면 피해간다는 메시지만 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아산과 진천 지역여론은 들끓고 있다. 천안 여론에 등 떠밀려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정부를 향해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원색적인 표현도 등장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국민 불안을 고려해 최대한 도심에서 떨어진 곳을 수용 시설로 점찍었다”며 “시간이 너무 촉박해 지역 주민과 협의할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아산·진천 지역의 반발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지난 28일 천안으로 수용이 알려진 뒤에도 정부는 “해당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설득 없는 수용 강행은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부실한 대처가 님비를 불러왔다고 지적도 있었다. 임지웅 법무법인 P&K 변호사는 “의료님비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우려나 불안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며 “선정과정과 이유, 향후 관리 방안 등에 대해서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잘 설명을 구하고 이해를 구하는 방법이나 절차가 좀 부족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1급 감염병인만큼 반대로 정부가 더 세심하게 심혈을 기울여 조치를 취하겠다’라던지 등의 설득이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관련법 개정을 통해 이번과 같은 상황에는 격리 장소들을 비밀에 붙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격리장소가 알려질 경우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 확진자가 아닌 경우에는 안정에 무게를 두자는 것이다. 

김 이사는 “이번 송환과 같은 사안에는 격리 전에는 격리 장소 및 현황을 극비로 붙일 수 있게 하는 쪽이 문제 해결에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정부의 관리감독이 가능한 대규모 격리 시설에 한해서는 이를 사전에 밝히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근거 법령의 제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