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만 칼럼] 중국공산당과 노멘클라투라의 망령

2020-01-29 16:29

[사진=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얼마 전 베이징 자금성에 벤츠 차량을 몰고 들어가 생각없이 기념사진을 올린 홍싼다이(紅三代:중국 공산당혁명세대의 손자손녀)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 문득 구소련의 몰락이 생각났다. 공산주의 혁명을 이룩 했지만 혁명의 결과는 그리 아름답지 못했던 구소련의 몰락 이면에는 특권계층이던 노멘클라투라가 자리잡고 있다. 

‘노멘클라투라(nomenclator)’의 라틴어 의미는 특권을 갖는 간부리스트라는 뜻으로 상의하달 하는 특권관료체제를 의미한다. 혁명이 아닌 기득권 세력들의 현상유지, 즉 권력의 유지와 입신출세를 지향하는 보수체질의 직업적 관리층이자 그 체제의 파워엘리트들이다. 이들은 공산사회에서 인민위에 군림하는 또 다른 신흥 권력집단이다. 공산혁명 이후 탄생한 전체국가에서 호의호식으로 호사를 누렸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전 영역에서 알짜배기 정보들을 공유하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온갖 이권을 획책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부정축재와 특권을 누리고 있다. 더욱이 그들의 권력은 세습되어 그들만의 천국을 확장시켰다. 그들의 영향력은 커지지만 그들이 꿈꾸어 왔던 혁명정신과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은 희석되면서 정권은 몰락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1921년 창당 이후 세계에서 가장 많은 9000만명의 당원을 거느린 거대정당으로 성장 했다. 공산혁명과정에서 당원 700만명중 절반인 350만명이나 희생을 시키고 탄생한 중국공산정권이다. 그 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개혁개방이라는 승부수를 띄어 변형된 사회주의 국가 체제에서 종합국력도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직도 14억 인구중 8억에 달하는 농민이 있고, 계층별 빈부격차, 도농격차, 지역별 동서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어떤 사회든 부정.부패와 권력의 독점화는 결국  체제에 대한 신념위기로 전화된다.

필자는 지금도 18차 당대회(2012.10)에서 나온 후진타오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생각난다. 그는 ‘부정부패를 다스리지 못하면 국가와 공산당이 망할 수 있다(亡黨亡國)’고 말하면서 본인이 완성하지 못한 부정부패 척결을 새로 탄생하는 시진핑 정권에게 당정군의 모든 권력을 한 번에 이양하면서 당부하는 자리였다. 당대회 후 중국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 총서기는 2012.11월 첫 지방시찰의 목적지로 광동성을 선택했다. 그는 광동성 지방 당정 간부들에게 “왜 소련이 해체되고 붕괴되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에 대한 시진핑 자신의 대답은 “소련이 이상과 신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중국공산당이 쇄신하지 못한다면 소련이 붕괴된 것처럼 중국도 붕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중국의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이 부패 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존망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6년간 고강도 반부패캠페인으로 ‘중국판 김영란법(2012년 12월 4일 정치국회의 통과)’으로 불리는 ‘반부패 8항규정’을 위반하여 처벌 받은 공직자가 무려 35만명에 달한다. 이는 현재 중국의 당정에 근무하는 공직자 1250만명의 약 3%에 달한다. 중국사회의 부정부패는 중국사회를 오염시키고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를 훼손시키는 작용을 한다. 중국 공산당내의 파벌(태자당, 태자상, 산동방, 상하이방, 공청단)들은 파벌을 유지하기 위한 막대한 검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정부패를 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곽말약(郭沫若:1892~1978)은 항일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신화일보에 ‘갑신삼백년제(甲申三百年祭)’라는 글을 4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글의 주요 요지는 이자성이 서북지방에서 100만에 달하는 농민 반란군을 일으켜 1644년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자금성에 들어와 황제가 되었지만 17만명에 불과한 만주족의 공격에 항복하고 100일천하로 끝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해낸 것이다. 혁명에 성공한 농민반란군들은 상하 지위고하 관계없이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곽말약은 이자성의 농민 반란군의 행태에서 보듯이 부정부패가 혁명의 초심을 흔들 수도 있음을 경계한 것이다. 신 중국의 건국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 곽말약은 모택동 주석의 초청을 받아 북경 외곽의 평곡현(平谷县) 서백파(西柏坡)에서 공산당 간부를 대상으로 ‘갑신삼백년제’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중국공산당의 부정부패가 나라를 망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모택동 역시 ‘우리는 제2의 이자성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이글을 통해 당내 정풍운동의 교재로 삼은 바 있다. 

중국공산주의자들은 ‘농민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굳게 뭉쳤던 정치세력들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대교체가 되면서 당초의 혁명정신은 사라지고 이젠 권력투쟁과 이권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미 물질과 자본의 달콤한 맛을 잊지 못하게 된 빠링허우(80후의 출생) 세대의 시대상황인식과 가치관으로는 혁명세대인 홍이따이(紅一代)의 처절한 혁명정신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중국사회는 개혁개방이후 세대들이 자본과 권력의 맛을 알게 되어 심각한 가치관의 혼란을 격고 있는 중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혼을 물질위주로 변질시키는 '노멘클라투라 망령'의 세력 확장을 경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