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정세균 총리의 세가지 할 일
2020-01-15 17:28
文대통령에 대한 올바른 정책조언, 실질적인 국민화합, 진정한 협치
경자년 첫날,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을 뵈었다. 스님은 정세균 총리 지명자에 대한 심경을 전했다. “어려운 시기에 죄송하고 고맙다.” 격을 버리고 수락한 그 마음이 고맙고, 무거운 짐을 맡겨 미안하다는 뜻이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시각은 정반대다. 인준 표결이 있던 날, 심재철 원내대표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삼권분립을 훼손했다”고 공격했다. 아마 정 총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덕문 스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게다.
정 총리는 참 어려운 결단을 했다.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체감경기가 좋지 않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아우성이다. 청년실업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성장률, 수출은 답보상태다. 미·중 무역 분쟁은 또 다른 변수다. 국민 여론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려 어긋난 지 오래다. 남북 관계도 의도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연초부터 독설을 퍼부었다. 사위가 미세먼지에 갇힌 듯 흐릿한 형국이다.
정 총리는 취임식에서 “마지막 봉사라는 각오로 희생·헌신하겠다”고 했다. ‘경제·협치·공정’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경제 활력을 제고하고, 협치로 사회통합을 이뤄내며, 사회 각 분야에서 불공정·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자리에서는 “좋은 총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좋은 총리’는 수사로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대독총리’ ‘의전총리’는 익숙하다. 국민들은 그에게 할 말은 하는 총리를 기대한다.
‘좋은 총리’는 소신과 강단을 밑바탕에 둘 때 가능한 목표다. 사람 좋고, 좋은 게 좋다는 식은 안 된다. 정 총리를 발탁한 DJ는 현실감각이 뛰어났다. DJ는 생전에 ‘서생적인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되뇌었다. 정 총리는 이런 기대에 비교적 부응한다. 대기업 임원과 산자부장관 경력은 현장을 중시하는 밑거름이 됐다. 성공한 ‘좋은 총리’는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대통령과 청와대 위에 국민을 세우는 일이다.
폭넓은 듣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정 총리가 언급한 ‘목요클럽’은 실효적인 방안으로 기대된다. ‘목요클럽’은 스웨덴 에를란데르 총리가 시작했다. 그는 사회 각계각층 인사와 2주마다 만났다. 만남에서는 경제정책과 현안을 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목요클럽’은 ‘하프순드 회의’로 이어졌다. 하프순드는 총리 별장이다. 이 회의는 10년 동안 지속됐으며, 참석자들은 “효과적이고 유쾌한” 회의로 기억했다.
에를란데르 총리는 “정치권력을 대표하는 사람은 경제권력을 가진 이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힘입어 스웨덴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정책은 평점이 낮다. 포용정책 방향은 옳지만 현장에서는 속도조절과 탄력적인 적용을 주문한다. ‘목요클럽’이 성공하려면 편견 없는 경청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 형식적인 대화가 아닌 비판까지 각오할 때 소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연후에 세 가지 할 일이 있다. 첫째,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올바른 정책조언이다. 현 정부는 무게중심이 청와대에 쏠려 있다. 공직사회는 불만이 팽배하다. 정 총리는 흔히 말하는 ‘문빠’ 대신 국민 전반을 보듬어야 한다. 최장집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청와대 정부’를 축소해 집행부에 이양하고 책임을 묻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와 내각 사이에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을 때 정 총리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는다.
둘째는, 실질적인 국민 화합을 위한 진지한 고민이다.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지금 화합은 가장 어려운 주제다. 다행히 정 총리는 이 분야에서 좋은 선례를 남겼다. 산자부 장관 재직 당시 한국노총, 민주노총과 첫 간담회가 그것이다. 투쟁 일변도 노동운동에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대화와 토론만으로도 이해하고 협력하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진영을 벗어나 설득하는 중재자 역할이 절실하다.
셋째는, 진정한 협치를 이루려는 행보다. 광장정치로 인해 민주주의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진영논리에 기반한 정치 양극화 때문이다. 정 총리는 야당과 진영 밖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그는 평소 “도덕적 우위에 기초해 상대를 배척하고 모욕 주는 것으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 대화와 타협은 정치가 변화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타협은 불가피한 차선이 아니라 최선”이라고 했다. 그런 각오로 야당을 만나 보듬고 타협해야 한다.
조선시대 대동법이 시행되기까지는 영의정을 지낸 김육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동법에 정치 인생을 걸었다. 효종은 즉위하던 해 김육을 우의정으로 불렀다. 김육은 세 차례 사직상소를 올리고 나가지 않았다. 결국 대동법 확대 시행을 조건으로 수락했다. 자리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서였다. 김육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보다 우선할 일은 없다”며 대동법 확대를 상소했다. 대동법은 혁신적인 세제였다. 땅을 많이 가진 지주는 세금을 많이 내고 없으면 안 내게 된다.
양반, 아전, 방납업자 등이 기를 쓰고 반대한 것은 당연했다. 대동법은 숙종 34년(1708) 전국으로 확대됐다. 정 총리가 고뇌 끝에 총리직을 수락한 이유도 오직 국민뿐일 것이다. 정 총리에게 주어진 현안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다.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정 총리는 “타협할 수 있는 것은 최대화하고,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최소화하는 게 정치다”고 했다. 이런 소신과 철학으로 후반기 국정 운영에 매진해주길 바란다. 그럴 때 “죄송하고 고맙다”는 국민들 바람에 부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