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한민국, 자유와 정의는 누가 지킵니까
2020-01-14 17:59
70년대 만화영화 영웅들은 '자유와 정의' 수호를 외쳤는데...
[김세원의 천방지축]
'2020 우주의 원더키디'의 해가 마침내 시작됐다. '2020'이라는 숫자는 '2019'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세상이 펼쳐질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희망과 걱정이 교차한다.
‘우주의 원더키디’는 서기 2020년의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인류의 행성 이주를 다룬 공상과학만화다. 1989년 KBS에서 방영됐으며 가수 소방차가 오프닝곡을 불러 화제가 됐다.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처럼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인 드라이브로 제작되었으나 치밀한 스토리와 뛰어난 작품성으로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때는 서기 2020년. 폭발적인 인구 증가, 자원 고갈, 날로 심해져 가는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심각한 생존의 위기를 맞게 된 인류는 지구를 대체할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독수리호'를 우주로 파견하게 된다. 독수리호 선장의 아들인 13세 소년 ‘아이캔’은 실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 수색대 우주선에 몰래 탑승하고 행성 탐사 중에 만난 외계인 소녀 ‘예나’와 함께 모험에 나선다.
◇디스토피아 2020
#도심 공동화
새해 벽두, 모임 장소를 찾느라 종각에서 종로2가 일대를 돌아다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연말연시 대목이어야 할 대로변의 상가가 사람들로 북적대기는커녕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몇 집 걸러 ‘임대’ 간판이 내걸렸다. 대낮임에도 뒷골목으로 접어들면 인적이 뜸해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종각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대로변이라면 이른바 ‘정통 상권’ 아닌가? 1970년대부터 청춘들의 만남 장소 역할을 해왔던 추억이 깃든 건물들도 1층, 2층 할 것 없이 텅빈 공간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가장 번화한 구역인 ‘종각 젊음의 거리’ 한복판에도 전체가 공실인 상가건물이 이어졌다. 오후 6시가 넘으면 ‘죽은 도시’로 변하는 유럽의 도시들과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상가정보연구소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9년 1분기 지역별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은 을지로 20.9%, 시청 20.8%, 충무로 20% 등으로 나타났다. 지난 연말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2019년 3분기까지 전국의 상가 평균 공실률은 11.4%로 2007년(11.6%)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사무실 공실률도 12.1%에 이른다. 공실률 급등의 배경으로는 내수 침체와 온라인쇼핑으로의 쏠림현상 같은 소비 행태 변화가 꼽힌다. 그런데 상점을 운영하던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걸까?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9년 한국 기업 전체의 해외직접투자액은 497억8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1.6% 증가했다. 1980년 해당 통계를 집계한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해외직접투자액은 우리나라 기업과 개인이 외국에서 기업을 인수하거나 현지 법인을 세우려고 부지 매입과 공장 건립 등에 쓴 돈이다. 중소기업만 따로 놓고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수출입은행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는 2019년 150억 달러(약 17조7990억원)를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과 비교하면 네 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 설비투자는 급감했다. 2019년 설비투자는 전년보다 5조원 이상 줄어든 19조88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33억 달러(신고 기준)로 전년 대비 13.3%나 감소했다.
#위기의 중소기업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중 연간 순이익이 0원이거나 손실을 기록한 곳은 2014년 15만4890개에서 2017년 20만2181개로 급증했다.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는 것은 다음 연도에 법인세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2014년 이후 3년간 세금 한 푼 내지 못한 중소기업이 4만개 이상 늘어난 셈이다. 2017년 서울 소재 모대학 경영대학원 AMP과정 수료생 40명 중 20명이 중소기업 오너인데 이 중 19명이 부도가 나 동기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한다.
◇70년대 어린이를 사로잡았던 공상과학만화영화
1970년대 초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 매일 오후 5시 30분이면 TV 앞을 지켰다. 어린이 시간대에 방영되는 만화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뽀빠이, 딱따구리 같은 미국 코믹만화나 순정만화보다는 스케일이 큰 일본 공상과학 만화영화에 끌렸다. 자유수호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구 정복을 꿈꾸는 악의 무리와 맞서는 특공대와 슈퍼로봇의 활약상을 보고 나면 통쾌하고 가슴이 후련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진 어린이 로봇 ‘우주소년 아톰’,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거대 로봇 ‘철인28호’, 사람이 탑승해 조종하는 마징가Z, 변신과 합체가 가능한 그레이트 마징가와 그랜다이저, 태권도로 악당 로봇을 물리치는 로봇태권V···.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지구특공대와 지구를 정복하고 인류를 말살하려는 절대 악당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궁극적으로 선이 승리하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는 필자를 포함한 당시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슈퍼히어로들이 활약하는 할리우드의 ‘어벤저스’ 시리즈가 시작되기 훨씬 전, 이 ‘애니’들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개인의 행복보다는 자유와 정의 수호, 나아가 인류 전체를 향한 헌신을 추구하라는 ‘통큰’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응답하라 ‘무적의 009’
공상과학 만화영화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애니는 ‘무적의 009’였다. 1970년 TBC동양방송에서 방영됐던 ’무적의 009‘는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9명의 사이보그가 전대를 이뤄 국제적 무기상 ’블랙고스트‘ 일당과 전투를 벌이는 공상과학 만화영화다. 무기 판매를 위해 세계 대전을 획책하는 블랙고스트는 살상능력이 뛰어난 사이보그 시제품을 제작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9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납치해 사이보그로 개조한다. 저마다의 아픈 사연을 가슴에 묻은 그들에게 인간이었을 당시의 이름은 지워지고 001부터 009까지의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그러나 자신들을 개조한 길모어 박사를 통해 실상을 알게 된 9명의 사이보그 특공대는 국적도, 인종도, 각기 가진 능력도 다르지만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내고 자유와 정의 수호를 위해 ’블랙고스트‘ 일당과 맞서 싸운다.
돌이켜보니 필자의 영웅이자 첫사랑은 실내에 있어도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특공대의 리더, 18세 미소년 009였다. 반인간 반기계로서 사이보그들이 느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타문화 출신 동료들과의 갈등과 극복, 전쟁과 문명사회에 대한 성찰 같은 철학적 메시지가 어린 마음에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공상과학 만화영화를 자양분으로 하여 성장한 ’키덜트‘이기에 2020 원더키디의 해, 반백년 만에 사이보그 특공대 ’009‘를 불러내 본다. 그들이 진영 논리로 찢겨진 대한민국 사회를 봉합하고 사라져 가는 ’자유‘와 변질돼 가는 ’정의‘를 되돌려 놓기를, 그리하여 한국을 탈출하는 기업들과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대하면서 말이다. 지금은 아직 새해 벽두, 헛된 희망이라도 품어보고 실현 불가능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자유쯤은 허용되는 시기가 아닌가.<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