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도주 후폭풍…닛산-르노 20년 동맹 무너지나
2020-01-13 15:51
FT "닛산 경영진, 분리 위한 비상계획 논의 중"
"닛산, 더이상 르노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 팽배"
"닛산, 더이상 르노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 팽배"
닛산과 르노의 20년 자동차 동맹의 붕괴 위기가 임박했다. 일본 자동차 기업인 닛산 고위 임원들이 르노와의 완전 분리를 골자로 하는 비상계획 마련에 나섰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닛산의 비상계획 안에는 엔지니어링과 자동차 제조업체 부문의 분리, 닛산 이사진 교체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다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닛산은 동맹을 유지할 경우와 파기할 경우를 나눠 미치는 영향과 장단점들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양사의 동맹이 굳건하던 시절에도 닛산 내에서는 엔지니어링과 제조 분야의 분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았다고 FT는 전했다. 닛산이 르노에 앞서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과 제조 분야의 통합은 닛산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극적 탈주극 뒤 양사의 동맹이 더는 이어질 수 없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연간 1000만대가 넘는 자동차를 함께 생산해온 두 기업이지만, 파트너십이 서로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당장 분리가 이뤄질지는 불분명하다. 장 도미니크 스나르 르노그룹 회장은 몇 주 뒤에 르노-닛산 동맹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복합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달 그는 FT 인터뷰에서 "우리는 진정한 협업을 위해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양사의 합병이 최종 단계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르노는 병합 유지에 무게를 싣고 있지만, 닛산 내부에서는 여전히 르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닛산 내에서는 동맹 유지를 이어가려는 스나르 회장의 행보가 닛산의 전체적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다만 신문은 "닛산과 르노는 완전히 갈라선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파트너를 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차 분야의 성장과 전 세계적인 자동차 판매의 감소와 비용 증가로 산업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독자 생존을 이어가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규모를 키워가고 있는 가운데, 규모의 축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 부분 통합된 닛산과 르노의 분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외신은 지적한다. 판매 부분은 완전히 통합돼 있고, 닛산이 새로 출시하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아리야'는 르노와 함께 개발한 새로운 플랫폼을 이용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은 연구·개발(R&D) 부문에서 협력하고 판매·영업망을 공유한다. 르노는 닛산 지분 43.4%를, 닛산은 르노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르노-닛산 동맹은 1999년 르노가 경영 위기에 놓인 닛산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탄생했다. 당시 르노 부사장이던 곤 전 회장이 파견돼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벌인 끝에 닛산은 흑자 전환했다. 이후 그는 20년 가까이 닛산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2018년 11월 일본 검찰이 유가증권 보고서상 보수를 축소 신고한 혐의 등으로 곤 전 회장을 체포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닛산과 르노의 경영 통합·합병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곤 회장의 체포를 주도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르노의 최대 주주인 프랑스 정부는 르노와 닛산의 경영 통합·합병을 원했지만 일본 정부는 매출이나 기술에서 르노에 앞서는 닛산이 르노와 합병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곤 전 회장은 지난달 보석 상태에서 대형 음향 장비 상자에 몸을 숨긴 채 일본을 출국, 레바논으로 도주해 일본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이후 그는 지난 8일 레바논 현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닛산과 르노의 싸움 과정에서 닛산과 일본 정부의 공모로 자신이 희생됐다며 자신의 도피를 정당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