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부자들] 빚에 쫓기던 젊은이가 100억원대 자산가로…"강남서 30년 버텼죠"

2020-01-13 06:00
빚에 쪼들리다 시작한 공인중개소 아르바이트
IMF·글로벌 금융위기 버텨 뚝심으로 잡은 기회
안양 10평대 집에서 한강뷰 래미안 팬트하우스

우리는 한 해에 부동산 자산이 수억원씩 불어나는 시대에 살아왔습니다. 혹자는 이 기회의 땅에서 큰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적은 이윤에 만족하거나 손해를 보면서 부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30대 이상 성인남녀가 두 명 이상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누가 어디에 뭘 샀는데 몇억을 벌었대"와 같은 주제가 으레 오갑니다. 삽시간에 궁금증의 초점은 그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에 맞춰지죠.

이에 본지는 소위 '아파트부자'로 불리는 이들의 이야기와 재테크 노하우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성공담과 실패 경험뿐 아니라 기회와 위기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과 전략, 그 결과까지 전하겠습니다. 매주 월요일 30부작으로 연재합니다. 이 기록으로써 우리 모두 나름의 교훈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전경. [사진= 아주경제DB]
 

'아파트부자들' 연재작의 첫 번째 주인공은 운반기계 제작 회사 직원에서 100억원대 자산가로 거듭난 현직 공인중개사 A씨(60대 중반)다. 젊은 날 그는 빚을 잔뜩 진 채 쫓기듯 강남에 정착했고,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를 행운으로 만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부자가 된 비결은 강남이 가진 입지적 이점을 알아본 안목과 인내심, 투기 유혹에 빠지지 않은 뚝심으로 요약된다. 지금은 강남 불패가 부동산 시장의 신화가 됐지만, 그가 처음 강남 아파트를 산 1980년대 초반 강남은 4대문 밖 불모지였다.

"나라가 망한다는 IMF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글로벌 금융위기)에도 저는 버텼어요.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겁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학습효과로 본격적인 강남투기가 시작된 1990년대 후반 이후에 시황에 따라 팔았다가 샀다가 했던 분들은 오히려 돈을 많이 못 벌게 된 셈이죠."

이제 60대 중반을 넘긴 노신사는 빚에 시달리던 젊은 날부터 강남 펜트하우스에 마지막 둥지를 튼 오늘날까지의 기억을 하나씩 훑어갔다.

이야기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첫 집은 경기도 안양에 있는 540만원짜리 전용면적 42㎡(당시 13평) 아파트였다. 28살에 첫 직장을 얻어 과감하게 대출받아 분양받은 집이다.

"저는 직원이 10여명 정도 되는 운반기계 제작회사에 다녔습니다. 당시 내 월급이 30만원이었어요. 장기대출을 받아서 달마다 조금씩 빚을 갚으면 되겠다 했죠."

당시 월급 30만원은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210만원 정도다. 집값 540만원은 약 4448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어서 부담스러운 빚은 아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에 친형 사업이 부도가 났어요. 채권자가 수백명이었고, 내가 빚을 대신 갚았는데 월급으로는 택도 없었어요."

"1979년 말에 우연한 계기로 아는 형님한테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복덕방에서 한 달만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아르바이트였죠. 창피해서 어떻게 하냐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1970년대는 미개척지였던 강남이 강북인구 분산 정책으로 개발되던 시기다. 특히 강북에 있었던 경기고와 휘문고 등 명문고가 강남으로 이전되고 아파트 분양이 활발할 때여서 부동산 중개 수요도 많았다.

"그땐 지금처럼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었어요. 해보니까 하루에 막 10여건씩 거래가 되기도 하고 돈이 꽤 됐습니다. 한달이 두세달이 됐고, 아예 본격적으로 넘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80년 그는 안양 직장을 그만두고 서울에 터를 잡기로 했다. 수중에 있는 돈은 집 처분금과 현금까지 합쳐 1000만원가량이었다.

이때 강남으로 넘어온 선택이 그의 인생을 뒤바꾼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그는 복덕방 인근 '반포주공2단지(현 래미안퍼스티지)' 상가와 전용면적 59㎡(18평)짜리 집을 하나씩 매입했다.

돈을 아끼려고 상가는 1120만원에 경매로 받았다. 집은 2000만원이 들었는데, 처음에 전세로 들어왔다가 나중에 사들인 것이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4200만원 자본에 총 매수금 1억4750만원이다. 기존 빚 때문에 대출이 나오지 않아서 친척한테 상당한 돈을 빌렸다고 한다.

그는 이때만 해도 앞으로 집값이 많이 오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1986년에 주공2단지 전용면적 82㎡(25평)짜리 한 채를 더 매입할 때만 해도 가격이 5000만원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1986년 어느 날 25평(전용면적 82㎡) 계약을 하기로 했는데 매수자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겁니다. 대구에서 올라온 나이 많은 집주인 성질이 어찌나 드센지...이 멀리까지 왔으니 네놈이 책임지라고, 사라고 막 윽박지르셨어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채무 관계가 정리될 때였어요. 다시 큰 빚을 지기가 싫어서 살 의사가 전혀 없었죠. 잠깐 기다리시라 하고 생각을 다시 해봤습니다. 중개업을 하면서 보니까 이렇게 거래가 잘 되는 동네에 이 정도 입지면 언제 팔아도 좀 더 받아서 팔리긴 하겠구나. 촉이 좋았는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전세금 2000만원이 껴있는 매물이었고, 현금을 1000만원 모았으니 2000만원만 어떻게든 구하면 된다는 심산이었다. 그는 집주인에게 100만원만 빼주면 사겠다고 했다. 결국 50만원 깎은 4950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선택이었다. 혹자는 운이 좋았다고 하겠으나, 정확히는 덜컥 찾아온 운을 기회로 만든 그의 안목과 대담함, 인내심이 주효했다.

이 전용면적 82㎡짜리 집은 238㎡로 재건축돼 33년 뒤 2019년 8월 무려 40억원에 팔렸으니 말이다. 장기보유특별공제로 양도세는 2억원만 냈다.

4950만원이 40억원으로 바뀌는 마법은 거저 일어나지 않았다. 1990년대 강남 부동산 투기가 본격화했을 때 충분한 시세차익이라 생각하고 팔았다면, 1997년 IMF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찾아온 폭락기를 인내하지 못했다면 얻을 수 없던 결과다.

"저한테는 18평(59㎡)과 25평(82㎡)짜리 집이 있었어요. 1990년대 되니까 집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고 아파트 투자자들이 엄청 들어왔어요. 1996년에 2억~3억원 중반대쯤까지 올랐었을 거예요."

"그런데 1997년 IMF가 터지니까 둘 다 2억원 밑까지 한 40% 정도 폭락했습니다. 이때 거품 빠진다 싶어서 처분하고 당시 그나마 괜찮던 1기 신도시인 인산이나 평촌, 산본 등지로 빠진 사람들이 많죠."

"고민이 많았어요. 곧 있으면 재건축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언제 될지, 그동안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니까. 나도 팔아야 하나 싶었던 적도 많죠. 입지를 봤을 때 강남보다 나은 곳이 없다는 확신으로 버텼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1999년에 정부가 강남 5개 저밀도 지역(반포·도곡·잠실 등) 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재건축 붐이 일어난 거예요."

2004년부터 재건축 절차가 시작되자 그는 전용면적 59㎡(18평)를 1억원 환급받아 112㎡(34평)로 받고, 82㎡(25평)를 238㎡(72평)로 받는 방향(인테리어 비용 포함 4억원 추가분담)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중소형은 현금화가 수월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로 대형 평형 처분 시 양도세를 대폭 감면받을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수도권 집값은 곤두박질쳤고, 대거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다. '끝없는 강남의 추락'과 같은 기사가 쏟아지고 조합원마저 급매를 내놓던 시기다.

"조합이 삼성건설(현 삼성물산)에 줄 공사비도 모자랄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삼성이 미분양분을 매입한 후 재분양하기로 했고, 삼성은 직원들한테 계약금 100만원만 받고 넘기기도 했다."

미분양 해소 차원에서 계약금 외에 중도금은 없었고, 입주 시점에 잔금만 치르면 됐었다. 강남에 집 사는 사람한테 제정신이냐고 핀잔을 줬다던 이때가 대박 터트릴 기회였던 셈이다.

"준공 시점인 2009년 초쯤 시장이 좀 살아나기 시작했고 한두달 새 2억~3억원 호가가 뛰더군요. 34평짜리는 현금으로 바꿔야겠다 싶었어요. 마음고생 그만하고 당시 노무현 정부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가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이렇게 빚에 쫓기다가 강남에 공인중개사로 정착해서 28년 전에 2000만원 주고 산 주공2단지(18→34평) 아파트는 14억5000만원에 양도세 3억3000만원을 내고 팔게 됐다.

그의 회상에 따르면 2005~2006년경 종합부동산세가 신설되고 과세표준인 공시가격이 대폭 올랐을 때 매년 3700만~3800만원에 달하는 보유세를 냈다고 한다.

이번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규제를 강화하자 그는 작년에 238㎡(72평) 펜트하우스를 팔고 268㎡(81평) 전세로 갈아탔다. 

지난 2017년 강남에서 재건축을 앞둔 모 단지 전용면적 76㎡(23평) 아파트를 13억5000만원에 매수해 전세 놓으면서 2주택자가 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일시적 2주택자 기간(2년) 내 매도시점을 잡고 1주택자로 돌아와 세금을 대폭 줄이면서 '똘똘한 한 채' 재건축을 통한 자산 증대를 기다리고 있다.

"제가 아파트로 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운도 좋았지만, IMF나 금융위기에도 침착하게 일희일비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빚을 져도 갚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학군, 교통 등 모든 측면에서 강남이 서울의 노른자 입지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황이 좋지 않았을 때 땅이나 건물, 상가 이런 곳으로 눈을 돌렸다면 아마 큰돈을 벌지 못하고 노하우도 쌓지 못했을 거예요."

"또 집을 3~4채 이상 보유하면서 갭 투자로 시차차익을 보는 데 매몰됐다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을 겁니다. 재테크 이상으로 단기적인 투기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게 다행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