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인사이트] 김우중·구자경의 타계와 '독만권서불여행천리로'

2019-12-16 06:00
유일한 한국공정여행업협회 협회장

 

유일한 한국공정여행업협회 회장. [사진=한국공정여행업협회 제공]
 

독만권서불여행천리로(讀萬卷書不如行千里路). 중국의 격언으로 ‘책을 만권 읽는 것은 천리를 여행한 것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최근 잇따라 유명을 달리한 재계의 큰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구자경 LG 명예회장에 대한 추모행렬을 보며 떠오른 말이다.

김 전 회장과 구 명예회장은 1980년대 ‘글로벌 경영’을 본격화해 우리나라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인물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세계화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한창 때는 1년에 절반 이상을 외국에 있었을 정도다.

김 전 회장은 1982년 11월 열린 임원 세미나에서 '기회는 도전하는 자만이 얻는다'는 인사말을 통해서 “올해 들어 325일 가운데 250일을 해외에 머물렀다”며 폭넓은 글로벌 행보를 직접 밝히기도 했다.

그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자신의 신념을 알리기 위해 1989년 같은 제목의 자서전까지 내놨다. 19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태어난 대우그룹이 1998년 589곳의 해외 네트워크를 가진 국내 재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으니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으로 그룹이 뿔뿔이 찢어지는 아픔을 맛봤지만 김 전 회장은 ‘우리 국민의 20%가 해외로 나가야 우리 국민이 산다’는 삶의 철학을 마지막까지 지켰다. 베트남 등에서 후진 등을 양성하며 남은 일생을 마감한 것이다.

2세 경영자인 구 명예회장도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시켰다는 점에서 김 전 회장과 삶의 발자취가 유사하다. 실제 국내외 70여개 연구소를 설립해 신기술을 확보하고 중국, 동유럽, 북미지역에 전자와 화학 공장을 건설해 ‘글로벌 LG’의 기틀을 닦았다.

이를 통해 1970~1995년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매출 260억원이었던 회사의 규모를 38조원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정신을 잘 이어받은 후대들은 지금도 LG라는 이름을 세계 곳곳에서 뿌리내리게 하고 있다.

두 회장이 일찌감치 해외에서 더 큰 꿈을 꾸려고 했던 것은 내세울 게 인력밖에 없었던 국내 시장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나라는 그 규모에 비해 큰 항공시장을 갖고 있다.

두 회장의 말처럼 꿈을 펼치기 위해 해외로 나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유학과 배낭여행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견문을 넓히고 있으며, 기업들도 해외로 나서는 데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내수 경기 침체 등으로 사회 전반에서 진취성이 사라지는 분위기다. 일례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내국인 출국자는 215만384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8.3%(19만명) 감소했다. 출국자가 감소세로 바뀌기 시작한 지난 8월 이후 낙차 폭은 매월 커지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승승장구하던 항공업계는 불안정한 환율 등 악재와 맞물리면서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3분기 만해도 대형항공사(FSC) 2곳과 저비용항공사(LCC) 6곳, 총 국내 9곳의 항공사 중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성장한 곳은 한 곳도 없다. 대부분 영업적자를 냈다.

이로 인해 기존 항공사들은 올해 말과 내년에 걸쳐 새롭게 출범하는 플라이강원과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LCC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시장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김 전 회장과 구 명예회장의 유산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 생각된다. 세계 시장을 자신들의 무대로 봤던 그 진취성이다. 항공사들은 단순히 우리나라 시장만 보고 장사를 할 게 아니라 주변국에서 소비자를 끌어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또한 해외에 나가는 것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는 관점의 대중적 인식도 필요하다.

김 전 회장은 1998년 10월 한 조찬특강에서 “아무것도 없는 데서 출발해 30년 만에 이만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지금 없는 게 무엇입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