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정상회담 기획]한중일 '청두 大同行'...동북아의 아침을 연다

2019-12-24 08:58
미래 펼쳐졌는데, 소모전 벌일 시간 없다…아세안.유럽처럼 '블록공생' 손을 잡자

[사진=연합뉴스]



한·중·일 3국의 청두(成都) 정상회의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탈(脫) 냉전 30년, 동북아질서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전후 70여년의 현상유지(status quo) 체제도 흔들리는 듯 보인다. 미국의 리더십은 약화일로다. 그렇다고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울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동아시아가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와 중국몽(中國夢)의 경합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3국은 각자의 개별관계도 추슬러야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한 건설적 논의가 청두에서 시작되기를 소망한다.

한·중·일 관계는 역사, 영토, 세력(power)이라는 3가지 차원에서 얽혀있어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병(病)에 대한 진단은 차고 넘치지만 마땅한 처방은 없는 것과 같다. 원론적이지만 역시 과도한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가 긴요하다. 3국 관계는 갈수록 안보 딜레마와 흡사한 ‘민족주의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시진핑(習近平)의 중국굴기(中國崛起)와 아베(安倍晉三)의 ‘보통국가론’이 부딪히면서 서로의 민족감정을 자극, 강화시키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배상문제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예 파문으로 번지면서 반일(反日)과 혐한(嫌韓)의 대립을 낳았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과 조치가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원한은 미래를 만들 수 없다”(仇恨沒有未來)고 하지만 과거 없이 미래도 없다.

맏형 격인 중국은 화이질서(華夷秩序)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주변국들을 모두 변방(夷)으로 간주해 중국 중심의 위계질서(hierarchy)체제에 편입시키려 한다면 진정한 우호관계를 조성하기 어렵다. 중국은 자유주의 국제정치론의 핵심인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압박의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비판을 유념해야 한다. 3국간 상호의존성이 깊어지면 관계는 더 발전해야 하나 중국과의 관계는 거꾸로다.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이 좋은 예다. 중국은 배치 불가(不可)를 요구하며 그 지렛대로 한·중 간 상호의존성을 십분 활용했다. 중국의 한국상품 불매와 관광금지로 한국이 입은 피해는 막대하다. 중국은 2010년, 2012년 일본에도 댜오이다오(센카쿠) 영유권 시비로 희토류 수출과 관광을 금지한 바 있다.

후발국가가 선발 국가를 추월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세력 전이론(power transition)은 3국 관계엔 맞지 않는다. 3국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갈 걸로 필자는 믿는다. 이를 위해서 덮어둘 건 덮어두는 유보(留保)의 지혜도 필요하다. 1978년 일본을 방문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일본 측이 댜오이다오 문제를 꺼내자 “우리보다 훨씬 현명할 후대들에게 맡기자”고 했다. 그는 난징(남경) 대학살에 대한 일본 측의 사과도 웃으며 물리쳤다. 실로 거인(巨人)의 행보였다. 중국 전문가인 모리 가즈코(毛里和子)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2015년 한 논문에서 영토문제는 유보, 재(再)유보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 전쟁할 생각이 아니라면 미·일 동맹도, 한·미 동맹도 묵인해야 한다. 중·미 갈등을 3국 관계 속으로 끌고 들어와서도 안 된다. 동아시아의 시간은 누구 편인가. 초조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올해 제60회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7월10일-22일, 영국 바스)에서 중국은 미국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위가 없는 3위였다. 일본은 13위로 112개국 참가국 중 역시 최 상위권이었다. 20세 미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경시대회는 각국의 미래 잠재력 수준을 엿보게 하는 상징적 창(窓) 중의 하나다. 한·중·일은 매년 빼어난 성적을 낸다. 교역량과 국제특허출원 등, 거의 모든 면에서 3국은 선두권에 선지 오래다. 지구상의 어느 국가들보다 좋은 조건과 밝은 미래를 가진 3국이 아웅다웅할 이유가 없다. 싸우면 다른 나라들만 좋은 일 시킨다. 소통하고 이해하고 협력함으로써 공동발전의 길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 초강대국-강대국-중견국가 간 공생의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3국은 물론 인류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길이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