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기습 필리버스터’ 변수…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안갯 속’(종합)

2019-11-30 01:09
내달 정기국회 종료 전까지 또다시 ‘식물국회’ 재현될 듯
‘본회의 보이콧’으로 한숨 돌린 민주당, 전략 수정 고민 중

자유한국당이 29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비쟁점 법안 200여건에 대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행)를 신청하면서 연말 정국이 다시 한 번 얼어붙었다.

일단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4당이 ‘보이콧’ 선언으로 이날 본회의가 불발되면서 필리버스터 돌입은 보류됐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앞으로 남은 11일 간의 정기국회 회기는 사실상 ‘식물국회’로 변질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찬 대표는 “30년 정치를 했는데 이런 꼴은 처음 본다”면서 “본회의에서 처리할 199개 안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선언에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고 이날 본회의를 무산시키로 결정했다. 이에 한국당은 본회의 개의를 독촉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결정족수 미달’을 이유로 개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본회의가 열리면 법안이 상정되는데, 한국당이 미리 신청한 필리버스터에 돌입할 경우 법안마다 최소 24시간 동안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다. 한국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199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날 신청한 본회의 안건은 199건으로, 한국당 의원 100명이 4시간씩 하면 약 8만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다.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내달 10일까지 270시간 안팎밖에 남지 않아 충분히 패스트트랙 법안을 저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론상 본회의가 열리면 199일 동안 필리버스터를 통해 표결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단, 회기 내인 경우다. 정기국회는 180일, 임시국회는 최장 30일이다.

변수는 자동으로 상정되는 내년도 예산안 때문에 다음달 2일 본회의가 잡혀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날도 한국당이 필리버스터에 나서면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닌 예산안과 예산안 부수법안을 제외한 다른 법안은 상정만 하고 표결은 못한 채 정기국회(내달 10일까지)를 마칠 수도 있다.

이 경우 민주당 등 범여권이 공들여온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패스트트랙에 올린 주요 법안도 표결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로 표결을 막았던 법안은 다음 회기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표결이 가능하다.

본회의가 파행되자, 여야는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들 처리까지 막혀버린 것을 놓고 서로 책임 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유치원 3법과 민식이법이 어떻게 필리버스터 대상이 될 수 있느냐”며 “한국당은 오늘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비판했다.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민식·하준·해인·태호 부모들은 “아이들을 협상카드로 쓰지 말라”며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눈물로 법안 처리를 호소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안건 중 민식이법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본회의를 열지 않고 있는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민식이법 처리를 막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본회의를 열면 민식이법부터 우선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야 모두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다음달 2일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릴 때 일부 법안들은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패스트트랙에 올라있는 선거제·검찰개혁 법안과 함께 내년도 예산안까지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단 민주당은 굳이 한국당과 합의하지 않아도 본회의를 얼마든지 열어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회법에 따라 본회의 개최 권한과 안건 상정 권한과 더불어 안건 순서 등을 정하는 의사일정 작성 권한까지 모두 국회의장에게 있다는 것이다.

국회법은 필리버스터 종결 요청이 들어오면 24시간 후 표결을 통해 종결하고, 종결 즉시 해당 안건을 표결에 부치도록 하고 있다.

한국당으로서는 안건별로 최소 24시간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24시간 후에는 안건을 표결할 수 있어서 안건 순서만 조정하면 처리가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예를 들어 의사일정 안건 순서 1번으로 선거법을 지정하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해도 중단 요청 후 24시간 뒤에는 표결 처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현재 기준 295명)의 과반(148명)을 넘어 필리버스터 종결 요건인 5분의 3(177명)이 확보됐을 경우다.

현재 의석수로만 보면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이 공조하면 토론 종결이 가능하지만, 내부 이탈이 나올 수 있고 바른미래당 비당권파가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등 의원들이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민주당과 국회의장 민생외면 국회파탄 규탄대회'를 열고 '필리버스터 보장, 민생법안 처리, 국회 본회의 개의'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