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이태현 콘텐츠웨이브 대표 "옆에 두는 책 한권 같은 OTT가 되고 싶다"

2019-11-26 16:29
출범 초기 성적표는 '합격' 이용자 편의성 강화에 '방점'
콘텐츠의 힘은 '서사'… 해외 투지금 유치로 기반 마련
OTT산업 큰 흐름은 통합… "미디어산업 성공 책무" 강조

"웨이브가 옆에 두는 책 한 권 같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되면 좋겠습니다. 책은 벤치나 소파, 카페, 침대 어디에서든 옆에 두고 펼쳐볼 수 있죠. 웨이브도 언제 어디서든 일상에 지쳤을 때, 예능을 보며 웃을 수 있고 지나간 드라마의 장면을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콘텐츠웨이브 사무실에서 만난 이태현 대표는 어떤 OTT가 되고 싶은 지를 묻는 질문에 대뜸 가장 오래된 미디어 중 하나인 책을 꺼내들었다. '옆에 두는 한 권의 책'이라는 비유에는 새롭게 등장한 미디어 서비스지만, 늘 우리 곁에 있었던 책처럼 편안하고 가까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이태현 콘텐츠웨이브 대표는 웨이브의 출범 초기 성과를 '기대 이상'이라고 평가하며 콘텐츠 확보로 글로벌 진출에도 성공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유대길 기자]


◆초반 성적표는 '기대 이상'··· 편안하고 손쉽게 이용하도록 개편 준비

지난 9월 18일 출범한 '웨이브(WAVVE)'의 현재 성적표는 '기대 이상'이다. 웨이브는 출범을 준비하면서 VOD(다시보기)뿐만 아니라 영화와 해외드라마까지 이용할 수 있도록 보강했다. 복잡했던 요금제도 단순화시켰고 동시접속 혜택을 추가했다. 그 결과 하루 평균 순증 가입자 수치가 평소보다 최대 4.5배 늘어나고 피크타임 트래픽도 최대 30% 이상 증가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어12' 야구대회 독점 중계로 동시접속자 수 36만7000명을 찍었다. 

이 대표는 "출범 후 주변의 기대와 예상보다 이용자들의 초기 반응이 좋다"며 "유료가입자 수가 목표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 서비스를 안착시키고 미래 계획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입자의 증가는 단순히 재무적 수익이 늘어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용자들의 사용 패턴에 대한 정보가 쌓이면서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함께 축적된다.

예를 들어 이용률이 가장 높은 시간대는 밤 10시다. 퇴근, 하교 후 편안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이용하는 비중이 높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는 어떤 사용자 환경이 가장 편안한지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내년에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로 웨이브를 전면 개편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대표는 "인터페이스 개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이성"이라며 "본인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찾아내고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겠다"고 설명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통신상품의 부가 서비스로 옥수수를 시청했던 이용자들의 경우 서비스 혜택이 줄어들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웨이브 측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다만 웨이브는 옥수수와 지향점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웨이브는 독자적으로 수익을 내 콘텐츠에 재투자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무료 영화, 해외시리즈를 일정 요금제 이상에서부터 제공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옥수수가 1000만명의 가입자 기반이 있지만, 웨이브가 유료가입자 목표를 2023년까지 500만명으로 설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베이직 상품 할인 프로모션을 연장하거나 채널 보강 문제를 계속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콘텐츠 힘, '서사'에서 나온다

웨이브의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은 콘텐츠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제공자인 지상파 3사와 종편 4사의 방송 VOD가 매주, 매일 업데이트된다. 7개 방송사 외에도 수많은 콘텐츠 제작자의 VOD가 축적되고 있다. 라이브 채널도 80개에 달한다.

이태현 대표는 KBS 교양PD 출신으로 '피플 세상속으로', '좋은 나라 운동본부' 등을 연출한 경험이 있다. KBS 뉴욕 PD 특파원과 편성정책 부장, 콘텐츠사업국장도 역임했다. 콘텐츠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전문가인 셈이다.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에서 경력을 쌓은 이 대표는 '서사'를 강조한다. 이 대표는 "그 사회의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예능보다 보편적 가치를 풀어내는 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며 "드라마 투자를 이어가면서 이용자들이 선호할 만한 콘텐츠를 발굴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콘텐츠 투자는 유통 수익과 가입자 수익으로 이어져 재투자의 기반이 되는 방향으로 가져가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외부 재무투자금 2000억원을 유치하면서 공격적인 콘텐츠 투자를 위한 실탄도 장전했다.

이 대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웨이브의 콘텐츠는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며 "대작 오리지널 드라마부터 다양한 포맷의 콘텐츠를 제작해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라인업을 갖춰 나가겠다"고 말했다.

웨이브의 콘텐츠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최근 종영한 '동백꽃 필 무렵'은 '최근 10년 내 지상파 드라마 중 손꼽히는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웹툰 원작의 '어쩌다 발견한 하루(이하 어하루)'는 인터넷상에서 시청률을 뛰어넘는 언급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웨이브는 '어하루'의 메이킹 영상을 독점 공급해 이용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3단계 글로벌 진출로 도약··· "웨이브, 사업 성공 이상의 책무 있다"

올해가 기존 서비스를 이용해 웨이브를 선보이는 과정이었다면 내년에는 콘텐츠 투자와 해외 진출의 기반을 다지는 해를 만들겠다는 게 이 대표의 목표다. 웨이브의 당초 목표가 글로벌 진출인 만큼 내년부터가 진정한 승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포석으로 해외 여행객 대상 서비스 '웨이브 고'를 선보였다. 웨이브 고는 출시 후 별도의 마케팅을 하지 않았지만 이용자가 증가해 최근 하루 1500명 수준까지 늘어났다.

두 번째는 교민 서비스다. 이 대표는 "해외의 경우 국내 콘텐츠를 보고 싶어도 시청 방법이 없어 불법 다운로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환경을 바꾸고 데이터를 쌓아 본격적인 진출로 가는 교두보로 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해외 진출은 국가별 규제 환경, 시장 규모, 기대 수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현지 통신사나 OTT와의 제휴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3단계 진출 전략을 밝혔지만 글로벌 시장에는 만만치 않은 강자가 수두룩하다. 1위를 독주했던 넷플릭스 앞에 콘텐츠 공룡 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에 NBC유니버설, HBO 등 미디어 강자들이 잇따라 서비스 출시를 예고했다. 동남아에는 저가 구독료를 내세운 아이플릭스와 같은 지역 강자 OTT도 버티고 있다.

국내에서도 CJ ENM과 JTBC가 자체 플랫폼에 대한 협약을 맺었다. 여기에 넷플릭스는 CJ ENM의 자회사 스튜디오 드래곤의 2대 주주로 올라섰고, JTBC의 자회사 'JTBC콘텐츠허브'와도 향후 190개 국가에 JTBC의 핵심 드라마를 공동 제작하고 유통하기로 합의했다.

이태현 대표는 OTT 시장이 표면적으로는 분열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큰 흐름은 통합으로 가고 있다고 내다봤다. 사업자들 간의 이합집산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가정하면서 '공정한 경쟁'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오랫동안 미디어기업들이 OTT를 내세워 경쟁했지만 글로벌 OTT 앞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웨이브의 탄생 전에도 국내 OTT들은 화합과 반목을 반복해왔다. CJ와 지상파 3사가 손잡고 OTT '티빙'을 선보였으나 이후 지상파 3사는 VOD 공급을 중단하고 '푹(POOQ)'을 설립했다.

이 대표는 "웨이브는 더 큰 통합을 위해 경쟁자와도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웨이브 대주주를 맡고 있는 SK텔레콤의 박정호 사장도 지난 25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에서 '통합'을 강조했다. 박 사장은 "코리안 웨이브를 아시안 웨이브로 만들자"며 "250개로 쪼개진 플랫폼에서는 아시아의 가치를 담은 글로벌 대작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또한 이 대표는 단순히 웨이브를 성공시키는 것 이상의 '책무'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주주사인 방송 3사와 SK텔레콤은 공공의 자원인 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공적인 영역을 도외시할 수 없다"며 "그런 회사들이 결합했다면 비즈니스도 성공시켜야 하지만 산업을 일으켜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