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르포-스쿨존] '민식이법' 호소에도 스쿨존은 여전히 '아슬아슬'
2019-11-21 11:25
단속카메라 없으면 속도 안 지키는 차량 태반…"불안한 마음에 아이 데려다 줘"
어린이보호구역 표시 제대로 없는 곳도…지각하는 어린이들 위험 노출도 더 커
서울수도권 6개 초등학교 인근 스쿨존 취재
어린이보호구역 표시 제대로 없는 곳도…지각하는 어린이들 위험 노출도 더 커
서울수도권 6개 초등학교 인근 스쿨존 취재
이번 청원은 지난 9월 11일 충청남도 아산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여 숨진 고(故) 김민식 군의 아버지가 지난 1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록한 것으로 '어린이들의 생명안전법안 통과를 촉구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왔다.
김 군의 부모는 자녀의 사고 뒤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교통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가해자를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음주운전·중앙선 침범 등 ‘12대 중과실’이 원인이 된 경우에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처벌을 강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특정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명 ‘민식이법’ 통과를 촉구해왔다. 특히 지난 20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 등에서 언급되며 스쿨존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아주경제 기획취재팀은 21일 오전 서울시 강서구 등양초, 은평구 불광초, 금천구 가산초, 송파구 가원초, 종로구 재동초등학교를 비롯해 5개 초등학교와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대야초등학교 등 6개 초등학교 앞에서 오전 8시부터 1시간가량 어린이들의 등교 환경을 취재했다. 국회 통과여부와는 별도로 민식이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위험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종로구에 위치한 재동초등학교 앞에는 과속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어린이보호구역 표시도 4개 설치돼 있으며, 시속 30㎞ 제한 표시도 3개 있었다. 과속감시카메라가 있는 곳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차량들의 속도는 느려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앞에서 4년째 교통안전 근무를 하고 있는 최일홍 보안관은 "요즘 초등학교는 교통안전 보안관이 배치돼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다"고 말했다. 최 씨는 "어제(20일) 등교시간 정문 근처에서 접촉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감시카메라 앞에서는 속도를 줄이지만 어린이보호구역 주변에서는 여전히 과속하는 차량이 많은 셈이다.
강서구에 위치한 등양초등학교 앞에는 어린이보호구역 표시와 속도측정기가 있지만 정작 과속감시카메라는 없다. 오전 8시10분부터 20분까지 학교 앞을 지나가는 차량 대부분은 시속 30㎞를 초과하는 속도로 지나갔다. 코너를 돌아나와 자연스럽게 속도가 줄여진 차량 일부를 제외하고는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해서 의식적으로 속도를 줄이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날 오전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교문 앞까지 데려다준 학부모 최아무개(48) 씨는 불안한 마음에 자녀의 등굣길을 매일 함께하고 있다. 최 씨는 "아이를 등교시키다보면 위험한 상황을 많이 보게 된다"면서 "학교 앞에서 과속과 신호위반을 많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을 하다보면 실제로 스쿨존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표시가 지금보다 많고 카메라가 좀더 다양하게 설치됐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송파구에 위치한 가원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자동차들도 어린이보호구역을 의식하지 않고 지나가는 차량이 여러 대 있었다. 횡단보도에 학생들이 건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레이크를 밟고 정차를 하지 않고 속도만 줄인 채 지나갔다. 주변을 감시하는 CCTV는 있지만, 역시 과속감시카메라는 설치돼 있지 않다.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대야초 앞은 불법주정차된 차량들로 가득차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가로등 옆에 비상벨을 설치해 놓았지만, 주차된 차량에 막혀 누르기도 쉽지 않았다.
대야초 앞에도 과속감시카메라는 없어 속도를 높이는 차량들이 종종 목격됐다. 차량은 물론 오토바이들도 30㎞를 넘는 속도로 달려 충돌사고가 우려되기도 했다. 학교 앞에서 교통안전 봉사를 하는 김아무개(58) 씨는 "교통안전을 위해 깃발로 정지 신호를 해도 빨리 달리는 차량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달리는 경우도 있는데 부모님이 함께 나오지 않은 저학년들이 특히 위험해 보인다"면서 "차량 속도를 낮출 수 있는 신호등이나 속도계가 있었으면 좋겠고, 교통 경찰들도 좀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은평구 불광초 앞에도 과속단속카메라는 없다. 녹색어머니 회에서 나온 학부모들이 오전 8시부터 8시50분까지 아이들의 등교안전을 위해 봉사에 나선다. 불광초 5학년과 2학년에 다니는 자녀를 둔 박정훈 씨는 "매일 아이를 데리고 등교하는데 주변에 차가 워낙 많고 위험해서 안심이 안 된다"면서 "큰 길가여서 그런지 차들이 시속 40~50㎞로 달리는 것 같다. 단속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속도제한을 시속 20㎞ 낮춰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천구에 위치한 가산초의 상황은 더욱 위험해 보였다. 인근에 공장 물류창고 공사장이 있어 트럭이 많이 다니지만 속도감시카메라는 없다. 골목에 차들이 몇 대씩 한꺼번에 들어올 경우에는 대부분 차량이 속도를 내지 않지만, 한 대씩 다니는 경우에는 감속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주변 주민은 말했다.
◇등교시간에는 그나마 낫지만···"지각하는 학생들 위험에 노출 잘 돼"
초등학교 등하교 길 주변에는 과속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이 6곳 중에 5곳에 달했다. 그나마 카메라가 있는 초등학교도 정문에서는 차량들이 속도를 줄였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속도를 내는 경우가 많았다. 초등학교 주변이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설정이 돼 있지만, 강제적 규제 장치가 없는 곳에서 어린이들의 안전을 신경써 운전하는 운전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등교시간에 교통안전 지도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스쿨존 주변의 도로와 교통 안전 환경이 열악해 일부 지각하는 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된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원초 앞에 위치한 한 아파트의 경비직원인 차갑룡 씨는 "우리가 나와서 통제를 안 하면 차량들이 엉키고, 아이들 등교도 매우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보통 오전 8시 30분부터 오전 9시까지 교통지도를 하는데 9시 넘어서도 지각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교통지도가 안 되는 시간에 등교를 하는 거다. 그럴 경우엔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원초는 문정법조단지로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출근길에는 차량이 많다. 차 씨는 "때로는 아이들이 건너는 횡단보도에 꼬리물기 하는 차량들이 가득 채울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지각한 학생들이 교통안전 지도 없이 등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산초등학교는 등교시간 학교주변에 설치됐던 차량 진입금지 안내 표지판이 철거된 뒤 일방통행 길에 차량이 바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는 자원봉사자와 지도 교사도 없어 급하게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안전이 우려되기도 했다.
은평구에 위치한 불광초 후문에는 아예 스쿨존이라는 표시가 없다. 학부모들이 구청에 요구를 했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불광초 주변의 안전을 담당하는 한용희 씨는 "학교 주변의 골목에는 차량뿐만 아니라 오토바이도 빠르게 달려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