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소재부품 자립이 진정한 산업기술 자립이다

2019-11-08 11:07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이탈리아 북부 안트로나 계곡의 수많은 염소들은 50m 수직절벽에서 목숨을 건 클라이밍을 한다. 보통 4600m 이상의 가파른 암벽 지형에서 서식하는 이 염소들이 오르기도 힘든 경사면을 목숨을 걸고 오르는 목적은 단 하나, 몸에 부족한 염분과 미네랄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바로 ‘소금’을 먹기 위해 이들은 목숨을 건다.

소금은 많이 먹으면 해롭지만, 먹지 못하면 체내 전해질 불균형으로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안트로나 계곡의 염소들은 목숨을 건 등반을 한다. 그들에게 소금이라는 존재는 아주 작지만 살아가는 데 중요하면서도 아주 큰 파급력을 가진다.

산업기술에서 소재부품 분야는 소금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재부품 분야 규모는 크지 않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국내 소재·부품 산업의 발달이 늦어진 이유는 정부 정책지원이나 개별 기업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특수한 사업구조로 소재·부품산업이 국내 산업생태계와 기업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소재·부품 분야는 일반적으로 개발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판매가 보장되지 않는다. 또, 판로를 확보한다 해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렵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소품종 대량생산에 익숙한 우리 기업문화에 맞지 않는다.

국내 반도체 산업을 필두로 하는 전자부품의 수출규모는 2018년 기준 1386억 달러로 주요 품목별 수출 비중의 43.8%(2018년 4분기 소재부품교역동향, 산업통상자원부)를 차지하고 있지만 실리콘잉곳, 불화수소, 포토리지스트와 같은 기초소재는 전량 수입하거나 극히 일부를 생산하고 있다. 이마저도 수출 품목에 적용할 만한 기술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소재부품의 현실이다.

지난 7월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슈로 국내 소재부품 분야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큰 위기를 겪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산업기술의 중요성을 따지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산업기술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을 기준으로 중요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소재부품기술 자립을 돕기 위해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을 개정했다. 또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지원을 통해 향후 5년간 연간 2조원 규모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까지 나서서 소재부품기술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성장을 돕기 위한 정책을 내놓을 정도로 소재부품기술의 큰 파급력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국내 소재부품 산업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산업기술평가관리원도 정부의 다양한 지원 정책 결정에 발맞춰 소재산업혁신기술개발사업과 전략핵심소재자립화사업을 신규로 지원하기 위해 다각도로 준비하고 있다.

지난 1일 폐막한 ‘2019첨단소재부품뿌리산업대전’을 통해 국내 소재부품 분야 기업들이 그간의 기술 자립화 성과와 미래 발전 전략을 공유하고, 국내외 수요기업 및 투자사와 비즈니스 확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올해 행사는 성과전시, 컨설팅, 수출상담회 등으로 구성해 기업들이 대외환경을 파악하고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또한, 대외 의존도가 높았던 우리 소재부품 산업에 대해 행사에서 논의된 내용을 발판으로 올해 핵심 소재부품 자립화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9첨단소재부품뿌리산업대전의 목표는 단순명료했다. 소재부품기술의 완벽한 자립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소금을 먹기 위해 목숨을 건 암벽등반을 하는 이탈리아 북부 안트로나 계곡 염소와 같이 국내 산업기술 분야의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재부품기술의 자립이 이뤄져야 한다.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소극적인 차원이 아니라 중소기업을 글로벌 전문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적극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재부품기술의 자립이 진정한 산업기술의 자립이라 할 수 있기에 정부와 민간이 전력을 다해 소재부품기술의 자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