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1조 순익 낸 손보사들, 車보험료 올리는 이유 살펴보니
2019-11-08 05:00
얼마 전 만났던 한 소비자단체의 인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그는 손보사가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최근 자동차보험료를 연달아 올려 서민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겉보기에는 크게 잘못된 말은 아니다. 손보사가 자동차보험에서 적자가 난다고 1년 내내 앓는 소리를 해왔다. 누가 들었다면 손보사가 큰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올해 상반기 10개 종합 손보사가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1조1442억원에 달한다. 숫자를 확인하면 손보사에 속았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미 번 돈이 많은 손보사는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 자동차보험료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손보사도 이익을 우선시하는 금융사인 탓일까. 하지만 손보사의 수익구조를 조금만 살펴보더라도 보험료 인상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손보사의 보험 상품은 크게 일반·장기·자동차보험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별 손보사마다 사정이 다르나 대략적으로 자동차보험은 적자이거나 거의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일반보험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어느 정도 흑자를 보장한다.
손보사 이익의 상당 부분은 장기보험료를 운용해 얻은 투자 수익이다. 본연의 업무인 보험영업을 통해서 얻는 수익보다 이 같은 투자수익이 압도적으로 크다. 금융권에서 보험사를 놓고 자산운용사라고 농담을 하는 이유다.
소비자단체 주장은 이같이 일반·장기보험 부문에서 이익이 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보험료를 올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부문에서 충분한 이익을 올리고 있는 손보사가 서민 경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자동차보험 부문에서 손해를 감수할 만하지 않겠냐는 논리다.
이는 일반·장기보험도 엄연히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생각이다. 자동차보험에서 적자가 계속되는데도 가격을 올릴 수 없다면 상대적으로 가격을 올리기 쉬운 일반·장기보험료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동차보험 가입자를 위해 일반·장기보험 가입자의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구조다.
일반·장기보험 가입자와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의무보험이라 반드시 가입할 수밖에 없는 자동차보험 가입자들이 모두 연금보험에 가입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만약 한 사람이 일반·장기·자동차보험에 모두 가입했다 하더라도 그 셋을 다른 계정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 같은 시각에서 보면 장기보험에서 손해가 났다면 장기보험 가입자가, 일반보험에서 손실이 발생했다면 일반보험 가입자가 부담을 감당하는 것이 옳다. 연관 없는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그 손해를 메워줄 의무가 없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보험 가입자가 많고 그 대부분이 서민이라 하더라도 일반·장기보험 가입자에게 아픔나누기에 동참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반·장기보험에서 나오는 이익은 자동차보험 손해를 메우기보다는 그 가입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보험료가 낮아지든 적립금이 높아지든 가입자를 위해 이익 잉여분이 처리되는 것이 옳다.
물론 이 같은 생각에 앞서 손보사들의 자구 노력이 우선이다. 손보사가 자신의 몫은 이전보다 더 많이 챙기면서 일방적으로 보험료만 올린다면 그야말로 가입자를 속이는 격이다. 가입자가 오롯이 부담을 떠안지 않도록 손보사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필수적이다. 금융당국의 관리·감독 역량도 이 부분에 집중돼야 가입자가 보험료 인상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르면 내년 초 자동차보험료가 또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하기 마련인 자동차보험료를 무작정 일정 가격에 묶어둘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에게 손해를 메워달라고 버티는 것보다 보험 서비스를 이용하는 만큼 가입자가 부담을 감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자동차보험료 인상에 대한 시각도 이제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다만 보험료 인상의 과실을 손보사가 독식해서는 안 된다. 보험료 인상으로 자동차보험에서도 이익 잉여분이 남는다면 가입자에게도 혜택이 바로 돌아가야 정당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