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특별시민' 자존심 살리는 박원순 서울시장 파격은?
2019-11-04 19:03
서울시장은 대권주자가 거치는 필수코스로 인식된 지 오래다.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후 선출직 시장 5명 모두가 대선후보를 지냈거나 대선주자로 거론됐다. 그중 이명박 전 시장은 대통령까지 됐다. 선출직 초대 조순 전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해 고건 전 총리, 오세훈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유력 대선주자로 꼽혔다. 박원순 현 시장도 한때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대권 꿈을 안고 서울시장에 도전했다. 김민석·강금실·한명숙·나경원·정몽준·김문수·안철수·박영선 등이 그랬다.
서울시장은 장관급으로 차관급인 다른 시·도 지사와 격이 다르다. 박원순 시장은 그런 서울시장 자리에 무려 세 번이나 뽑혔다. 선출직 3선 서울시장은 박 시장이 역대 처음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은 현재 4% 안팎이다. 7%대를 기록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보다 낮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별시민’으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서울시민들도 있다. 서울시장으로 세 번을 뽑아준 박 시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이 저조한 게 안타깝다는 것이다.
서울시장은 수도 서울의 행정 최고 책임자다. 그러니 지금은 시정을 챙기는 데 전념할 때라고 박 시장 측은 주장할 수 있다. 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를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핑곗거리다.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한 지지율에 개의치 않는다며 느긋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박 시장 자신도 이런 변명에 동의한다.
박 시장 주변에선 요즘 여권 라이벌들이 사실상 대권경쟁에서 멀어진 것 아니냐고 한다. 박 시장은 가만히 있는데 경쟁자들이 자살골을 넣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를 콕 찍어 거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말의 맥락으로 보면 그 경쟁자 그룹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빠지지 않는다. 재판을 받았거나 재판 중인 이재명 경기지사, 김경수 경남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박 시장의 대선주자 지지율이 이들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박 시장 직무수행 지지율이 높은 게 아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9월 그의 지지율은 45.4%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6·13 서울시장 선거 때의 득표율 62.8%에도 한참 모자란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8년간 박 시장의 뚜렷한 리더십을 찾을 수 없다. 대권주자로서뿐만 아니라 시 행정 최고 책임자로서도 그렇다. 검찰개혁 등 주요 현안에서 언제나 뒷북이었다. 여권 내 세력 구도상 소수파로서 주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 행정에서도 박원순표 대표정책으로 꼽을 만한 게 잘 보이지 않는다. 박 시장은 그런 잣대로 평가하는 것을 “과거 정치의 생각”이라고 했다. “청계천처럼 한 가지만 했다고 평가받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 대세는 시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챙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박 시장 시대, 서울은 복지 등 소소한 부분에서 많이 달라졌다. 삶이 나아졌다고 평가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역점사업이었던 광화문광장 재조성 추진 과정을 보자.
처음엔 충분한 소통 기회를 가졌다며 시민단체·행정안전부 등의 반대에도 강행할 태세였다. 그러다 느닷없이 문재인 대통령과 면담을 갖고 물러섰다. 박 시장은 이를 스스로 ‘결단’, ‘용기’, ‘정면돌파’라고 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그런 처신이 지지율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의문이다. 그 의문은 재검토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다.
박 시장이 대선주자든 직무수행이든 지지율을 다시 회복하려면 파격이 필요하다. 그 파격은 시대 정신에 맞는 이슈를 개발해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리더십 발휘에서 나온다. 자신만의 고유 브랜드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는 것도 박 시장에게 긴요하다. 기존 정책의 단순 확장만으론 한계가 있다. 최근 선심행정, 예산퍼주기 논란을 일으킨 청년수당과 신혼부부 주거지원 등이 대표 사례다.
박 시장에겐 지금이 서울 특별시민의 긍지를 살리고 대권 도전의 희망을 살리는 중요한 고비다. 그가 진지한 고민과 자세 전환을 통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