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패권경쟁,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없다
2019-11-03 18:21
[주재우의 프리즘] 미중패권 경쟁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관계를 논의하는 장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있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다. 미·중 양국 간의 패권경쟁은 과거 패권국과 신흥 세력 간의 역학관계가 교차점, 즉 신흥 세력이 패권국의 역량을 추월하는 시점에서 두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 교차점에서 두 세력이 서로의 정치·외교·군사적 의도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는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어 이런 행위가 전쟁 발발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논리다.
패권국은 세력균형이 자리매김하기 때문에 이를 신흥국가가 수용할 것이라고 보고 신흥국의 기존 체제에 대한 불만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신흥국은 기존의 체제에서 자기 몫을 정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패권국이 수용할 것으로 과대평가한다. 오늘날 미·중 양국의 무역 갈등이나 남중국해를 둘러싼 영해권 문제와 항행의 자유 간 갈등,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동맹체제 강화를 통한 기존의 지역질서를 고수하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미·중 간의 군사·외교적 갈등의 심화가 전쟁의 가능성을 상승시킨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앨리슨 교수는 투키디데스의 분석을 오늘날의 패권경쟁 구도에서 재조명했다. 당시 패권을 누리던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성장으로 세력 균형이 이뤄지면서 전쟁 발생 가능성에 안일하게 대처했는데, 결국 30년의 전쟁과 30년의 평화, 그리고 또 한 번의 전쟁과 같은 정반대의 결과가 양산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패권국과 신흥강대국 간에 무력 충돌이 불가피한 이유를 미·중 패권경쟁 관계의 연구에 적용하고 유사한 결론을 조심스레 제시했다.
앨리슨 교수의 미·중관계에 대한 우려스러운 전망은 그만의 사례 분석에 근거한다. 그는 그의 책 말미에 첨부한 부록 부분에서 지난 500년간 패권국과 신흥대국 간의 충돌 사례 16건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 중 12개 사례가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물론 사례 하나하나가 다 논쟁거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략적인 의미에서 유의미한 결론이기도 하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오늘날 미·중관계 분석의 틀로 고착화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책 때문뿐만이 아니다. 이를 탐독했는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를 왕왕 인용한 사실 때문이다. 그는 기회만 되면 이를 인용하면서 미·중관계의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일례로, 2013년 11월과 2014년 1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양국의 경쟁관계가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2015년 9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미·중관계가 그런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는 것을 확인했다. 종합해보면, 중국 역시 미국과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2012년 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이후 대외적으로 피력해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미·중관계를 역설한 앨리슨 교수나 시진핑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를 간과한다. 앨리슨 교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는 함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설명하면서, 미·중관계의 분석에서는 정작 같은 ‘함정’을 찾지 못하는 맹점을 드러냈다. 시진핑 역시 마찬가지고, 많은 전문가들 역시 이 부분을 극도로 간과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함정은 ‘동맹 딜레마’에 있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의 역학관계에 변화를 감지한 이들 동맹국의 이탈과 그로 인해 발생한 갈등에 두 강대국은 연루될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진영에서 한 동맹국이 이탈을 시도하고 스파르타 진영에 합류하려는 시도를 하면서 두 강대국 간의 세력 균형에 균열을 불러일으켰다. 스파르타 진영의 또 한 나라 역시 부상하는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스파르타의 동맹관계를 이용해 아테네 진영의 국가들과의 갈등과 전쟁을 자초했다. 전쟁 발생 시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지원과 개입을 할 수밖에 없어 이런 상황에 계속 연루된 결과 두 강대국 간의 전쟁이 불가피해졌다.
오늘날 미·중관계에서 모두가 간과하는 팩트를 한번 되짚을 필요가 있다. 첫째,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두 강대국이 직접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동맹국들이 갈등을 승화시켜 전쟁을 양산한 결과, 두 강대국이 연루된 것이다. 오늘날 미·중 양국이 직접 전쟁을 발동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두 나라가 대화와 협력을 통해 갈등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강조하는 이유다.
둘째, 중국은 원론적으로 동맹국이 없기 때문에 중국에는 동맹국가와의 갈등상황, 이른바 ‘동맹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없다. 북한을 원칙적으로나마 유일한 동맹국이라고 간주하면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북한 역시 중국의 ‘묵인’이나 ‘인정’ 없이 어떠한 전쟁을 치룰 수 있는 여력이 없기 때문에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 역시 매우 희박하다.
여기서 셋째, 팩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서 이들의 전략이익을 대신해 갈등을 자초할 동맹국이 없다는 사실이다. 즉, 이들 국가의 이익이 자국의 이익과 일치한다고 해서 전쟁을 일삼을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국이 미국의 동맹으로 미·중 패권경쟁 과정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 배치를 한 사례가 반론으로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사드 때문에 우리가 중국의 동맹국인 북한과 전쟁하거나 미국을 대신해 중국에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는 함정에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다.
넷째, 미국과 중국의 동맹국 간에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북아에서도 북한과 일본, 남북한 간에 위협은 있어도 전쟁을 불사할 정도의 갈등 요소는 없다. 남중국해에서도 북한이 미국의 동맹인 태국, 또는 미국의 준동맹 수준인 필리핀이나 싱가포르와 중국의 전략이익을 위해 갈등을 벌일 확률은 거의 없다. 대만문제가 돌발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나 대만과 미·중 전략이익을 위해 미국의 동맹이나 북한도 도발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앨리슨 교수가 자신의 근거로 제시한 16개의 사례는 이런 ‘동맹 딜레마’로 빚어진 사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입장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주목을 끄는 이유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미관계의 발전에 따른 결과가 중국에 ‘함정’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북·미관계의 최종 종착지인 관계 정상화가 현실화될 경우, 이는 중국에 치명적일 것이다. 북한의 중국 진영 이탈로 동북아의 기존 세력균형이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자신의 영향력과 지분을 고수하는 전략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 부상하던 아테네 진영에서 이탈을 시도했던 나라처럼 북한이 중국의 진영에서 이탈을 시도하려 할 때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미·중관계나 이들의 동맹체제에 앨리슨 교수가 주장하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전쟁을 대신 치러줄 국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시대처럼 함께 대리전을 자처할 나라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최근 한·미 군 당국 간에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 측이 미국의 유사시 한국군의 파병 조항을 삽입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이유를 이런 맥락에서 유추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미국의 이런 군사적 요구와 압력을 슬기롭게 피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외교로 동맹의 가치에 우리가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