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웅대한 작전'은 비핵화 시간끌기 꼼수
2019-10-20 15:48
[주재우의 프리즘] 김정은의 백마행군, 비핵화 시간끌기용 꼼수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6일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스톡홀름 노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과 북한의 대미노선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번 등정에서 정치·외교적으로 중대한 결심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매체들은 "세상이 놀랄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웅대한 작전'은 꼼수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꼼수는 이미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북·미회담의 북한 대표단이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으로 교체된 사실로 드러났다.
통일전선부는 2018년 북미회담이 시작되면서부터 북한 대표단을 이끌었다. 따라서 외무성의 교체는 김정은의 대미 협상전략에 본질적인 변화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앞으로 북·미회담과정에서 잦은 휴정과 중단을 유발하면서 이를 지켜보는 이에게 더 큰 좌절감만 가져다 줄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을 분석함에 있어 북한이 공산주의체제 국가라는 사실을 왕왕 망각하고 자유민주주의체제 국가로 종종 착각한다. 그래서 북한의 대미 실무협상단이 외무성으로 교체된 사실에 ‘이제 북한이 제대로 가겠구나’라고 안도한다. 정말 공산주의국가를 모르는 순진한 분석이고 북한을 자유민주주의국가로 착각하는 환상이 빚어낸 결론이다. 이에 감히 경고하지만 공산주의국가를 연구하는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심각하게 각성해야할 문제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의 ‘당-정’체제 통치 구조의 의미를 여기서 한번 곱씹을 필요가 있다. 노동당과 그 소속기관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나 정부는 없으며 대신 당의 결정만을 집행하는 기구에 불과하다. 협상에서 의사결정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북한 외무성이 이끄는 북미회담은 지지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대미 협상을 이끌었던 통일전선부는 단기간에 신속하게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개최 관련 제반사항에 대한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런 노동당의 직속기관인 통일전선부를 김정은이 대미 협상 대표단의 자리에서 내치고 이를 외무성으로 교체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북한 외무성이 대 미국 협상대표단으로 참석한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이를 한 번 회고해보자. 북한 외무성이 대미 협상대표단으로 협상을 이끌었던 첫 번째 사례는 1993년의 1차 북한 핵위기 사태 때였다. 2차 북한 핵위기 사태 때도 북한 외무성이 6자회담에 북한대표단으로 참여했다. 두 사례를 상기하면 우리는 한 가지 부분에 공감할 수 있다. 협상이 매우 지지부진했다는 사실이다. 1차 북한 핵위기 사태 때 1993년 6월에 시작한 협상은 1995년 10월에 종결되었다. 그러나 1995년에 합의된 '제네바회담'의 이행 관련 협상이 1998년까지 이어졌다. 이 사이 김일성의 사망과 김정일의 정권 승계 등 북한 국내정치의 변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상당 기간 걸린 것도 사실이다. 2차 북한 핵위기 사태는 2003년 4월의 3자회담을 필두로 2008년 2월에 6자회담이 중단되었다. 그 사이 두 개의 합의문이 도출되었으나 제대로 이행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부대표단이 체결한 합의문의 의미를 한번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의미는 논지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여기서 논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두 개의 사례가 외무성의 통일전선부 교체에 주는 역사적 교훈 두 가지를 조망해볼 것이다. 그 첫 번째 교훈은 북한 외무성 대표단에게 의사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북미회담은 장기적이고 지지부진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 반면 통일전선부와 국무위원이 이끌었던 미국과의 실무회담은 모든 협상이 신속하게 진행되었고 결과도 있었다. 그 결과는 두 차례의 북미정상회담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북한 외무성이 이끈 미국과의 실무회담은 중간에 휴정도 많았고 중단도 자주 되었다. 미국 실무협상 대표단을 이끌었던 로버트 갈루치와 크리스토퍼 힐 등은 회고록에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이들의 각각의 협상대상이었던 강석주와 김계관은 평양에 우선 연락해 지시를 받거나 중단하고 귀국해 교착 사안에 대한 당의 의견과 결정을 수렴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교훈은 당 차원에서 북한이 미국과 협상을 진행할 때 갖는 의미가 정부 차원의 때와 확연하게 다르다. 이는 협상 결과에서 입증되었다. 정부차원에서의 협상은 북·미 양국 간에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을 문서화함으로써 정치적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받기로 한 이득의 보증서와도 같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 북한이 진행하는 대미 협상의 의미와 목적은 달랐다. 당의 최고지도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그를 위한 협상이었다. 따라서 그 의미가 정상회담으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격했다.
당이 대표단으로 참석한 대미협상의 목적은 북미정상회담을 위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 대표단은 당 최고지도자로부터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협상에서 상황에 맞게 유연성과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 결과 단기간 내에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준비회담이 실무급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다. 회고하면 1차 북미정상회담은 그 아이디어가 제기된 지 3개월 만에 이뤄진 사실도 이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 역시 유사한 경과를 거쳤다. 개최 직전 한 달 동안 두 번의 실무회담을 거쳐 모든 것을 결정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눈 내리는 백두산에서 말을 타며 구상한 ‘웅대한 작전’은 따라서 미국과의 협상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갈 꼼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북한 대미 협상대표단의 외무성으로의 교체는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 때문에 자신과의 회담에는 신경 쓰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이에 대비한 선제공격을 날린 것 같다. 그러므로 3차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를 마냥 낙관할 수만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에서 북한주민에게 ‘자력부강과 자력번영, 그리고 자력갱생’을 호소했는지 모른다.
북한은 내년도 외교 전략 구상을 끝낸 마당에 우리 정부는 이직도 혼란과 분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도 외교에서 우리는 벌써 북한에게 몇 수 접고 들어갈 것이 자명하다. 혹자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 정부가 북한 체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허둥대면 북한의 농락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성급한 기대나 환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