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대학 학위는 보증수표 아니다…청년은 직업 바꿀 준비해야"
2019-10-29 07:29
저출산·고령화 시대…입시위주 한국교육 전환 필요
스웨덴·싱가포르 등 직장·기관서 꾸준히 교육 지속
노동자 숙련도 제고·재숙련 위한 지속적 노력 필수
주도적·창의적 학습자 양성…미래교육 힘 쏟아야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 "교육은 학생에게 학습나침반 쥐여주는 것"
스웨덴·싱가포르 등 직장·기관서 꾸준히 교육 지속
노동자 숙련도 제고·재숙련 위한 지속적 노력 필수
주도적·창의적 학습자 양성…미래교육 힘 쏟아야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OECD 교육국장 "교육은 학생에게 학습나침반 쥐여주는 것"
지난 23일,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국장의 날 선 지적에 경기도 고양 킨텍스 6A홀을 가득 채운 국내외 교육관계자 700여명의 표정이 굳어졌다. 교육부와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공동 주최로 지난 26일까지 OECD와 함께하는 ‘2019 대한민국 미래교육 한마당’이 열렸다. ‘2030년을 향한 한국교육, 학생 성공을 다시 정의하다’의 기조 강연자인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세상의 변화가 빨라질 때 적응에 뒤처지면, 교육은 훨씬 더 뒤처진다”며 "과거의 교육 방식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대학 입학은 단지 인생의 한 시점일 뿐 다양한 직업 입직(入職) 경로를 마련해야 한다"며 "성공의 의미도 평생에 걸쳐 학습해야 하는 시대에는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변화하는 노동 시장에선 단지 학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교육시스템을 통해 더 많은 창의력과 기업가 정신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 대학 입학시험체제는 사교육을 포함한 오랜 학습 시간, 시험 불안, 행복감 저하, 자기효능감 부족 등 부정적인 결과로 우리나라에 많은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인적 자본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한국의 청년들은 생애에 걸쳐 직업을 바꿀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교육과 직업에서 더 다양한 경로를 마련하고, 읽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닌 배우기 위해 읽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던 과거 정부는, 국가를 이끌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더는 이 모델이 통하지 않는다고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진단했다. 그는 “구글 검색으로 원하는 콘텐츠에 접근하고, 정형화한 인지능력은 디지털화는 물론 외주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직업 세계가 빠르게 변하는 오늘날의 교육 초점은, 컴퓨터가 쉽게 처리할 수 없는 복잡한 사고와 복잡한 업무를 감당하도록 사람들을 평생 학습자로 이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생 학습자가 되기 위해 학생 역량은 어떻게 강화해야 하는가?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교육은 학생에게 ‘학습나침반’을 쥐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OECD는 학생이 미래 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자기 주체성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식 △인적역량 △태도 및 가치 영역으로 구성된 ‘학습나침반’ 개념을 올해부터 보급하고 있다. 학생이 다양한 유형의 지식뿐만 아니라 불확실한 세계를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인적역량, 태도 및 가치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지식 영역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라며 “학제적 지식뿐만 아니라 학제 간 연계할 능력이나 실제 세계의 문제를 풀 응용지식에 관한 능력, 특정 유형의 지식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는 것도 지식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인적역량 영역은 학교와 직업을 준비하는 것을 넘어 삶에 도움이 될 인지적, 사회-정서적, 신체-실용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협력적인 교실 환경이 사회-정서적 역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학교폭력은 학생의 사회-정서적 능력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학생은 집중력이 높아져 산만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OECD의 2030년 성공에 대한 재정의는 학생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사용할 변혁적 역량을 키우도록 돕는 것도 포함한다. OECD 학습나침반에는 미래를 위한 세 가지 변혁적 역량인 △새로운 가치 창조 △책임감 느끼기 △긴장과 딜레마 해소 등이 포함돼 있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한국 2015 교육과정을 보면 ‘자주적이고 창의적이며 교양 있는 민주시민’을 미래교육비전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는 OECD의 학습나침반과 맥을 같이 한다”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학습자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한국이 지난 2006년 이래 과학 학업성취 수준 평가(PISA)에서 계속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과학자를 직업으로 꿈꾸는 청년이 적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과학 학업성취가 높은 학생 중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만이 30세에 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며 “상당수 청년이 과학에 흥미가 없는데도 과학 분야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이냐”고 반문했다.
이는 PISA가 조사한 ‘학습 시간과 과학 성취수준’ 통계 데이터에서 확인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처럼 학업성취가 우수한 국가 중 일부는 학교 및 방과 후 학습 시간을 많이 줄이면서도 뛰어난 성과를 달성했는데, 이는 학습 경험의 질이 학생이 공부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이런 교훈은 학생이 신체활동, 사회생활 및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를 희생하면서 시험을 준비하고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 사고의 전환을 요청하는 도전 과제”라고 덧붙였다.
◆30년 만에 세계적 교육시스템 일군 한국…평생교육 정책은 갈 길 멀어
한국의 전후 개발모델이 교육적 성취를 기반으로 이룩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경제 체제하에서 좋은 교육은 좋은 직업과 좋은 경력을 쌓는 기회를 제공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시스템으로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한국 평생교육 정책은 갈 길이 멀다고 봤다.
그는 “한국에선 대학 이전의 교육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대학 입학 후에는 교육받는 양이 크게 줄어드는 반면, 스웨덴이나 캐나다, 싱가포르에선 직장이나 다양한 기관에서 평생학습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대학 교육시스템에서 역량 미래 시스템으로 전환 중이다. 정부가 일과 학업의 시기를 유연하게 조정해 국민에게 일·학습 재량권을 준다. 일을 먼저 하고 싶으면 직장에, 학습하고 싶으면 학교에 간다. 그는 “학습 자체가 일이 되는 시대가 됐기에 삶의 전반기에 받은 교육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출산율 저하, 빠른 고령화 진행 시대에 대학 입학에 매몰된 한국 교육 시스템은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인 한국은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도 제고와 재숙련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슐라이허 교육국장은 “생애에 걸친 인적역량 개발은 경제와 사회가 불확실한 세계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학교 교육이 대학입학시험을 준비하는 교수학습에서 벗어나고 학생이 학습과 일, 생활에서 목적성과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미래교육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명예교수이며 OECD 사무총장의 교육정책 특별자문관을 담당하고 있다. OECD 국제 학업성취도평가(PISA)를 비롯한 국제적인 평가 도구들을 창설하고 관장하면서 정책입안자·연구자·교육자들이 교육정책과 관행을 혁신하고 변화시키는 데 글로벌 플랫폼을 제공해왔다. 그를 두고 마이클 고브 영국 국무장관은 “영국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칭했고, 안 던컨 미국 교육부장관은 “국제적 이슈와 도전과제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범적 민주화 참여’에 대한 공로로 독일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테오도어 호이스 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