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신과 악마는 디테일 속에 동거하는가
2019-10-21 11:12
미니멀리즘 건축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독일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와 관련한 글을 읽다가, 그가 말했다는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는 익숙한 문장을 본다. 아무리 거대한 건축물도 사소한 부분에서 완성된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위대하다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 완성된 품격은,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에서 생겨난다고 그는 주장했다. 디자인의 금언이 된 '덜한 것이 더 나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말도 그가 쓴 말이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는 말도 있다. 이 말은 독일의 예술사 학자 아비 바르부르크(1866~1929)가 즐겨쓴 표현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말 같지는 않고, 속담에 가까운 말을 자신의 신념으로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서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가 '선한 신은 디테일에 있다(Le bon Dieu est dans le détail)'란 말을 했다고 한다. 플로베르의 저 말을 읽었다면, 아비 바르부르크는 그것을 뒤집어 더욱 생생한 표현을 찾아낸 것이고, 또 반 데어 로에가 같은 독일인인 바르부르크의 '악마 디테일'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면, 그 예술이 달려간 광기의 저쪽에 있던 무엇을, 다시 점잖게 신의 품격있는 경지로 되돌려놓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저 두 개의 문장을 함께 읽으면, 신이나 악마나 모두 디테일 속에 있는 것이니, 신과 악마는 동거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까. 신은 그 디테일 속에서 가장 고결하고 완전한 것을 이루기 위해 내려와 있고, 악마는 그 디테일 속에서 신의 완전함을 흠결내기 위해 정교하고 세심하고 끈질기며 은밀한 기획으로 방해하기 위해 역시 강림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디테일 속에서 신과 악마가 싸워 놀라운 신의 광휘를 증명하는 인간이야 말로 거장이란 이름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디테일 속에서 인간은 흔들리면서 그 신성의 사소하고 사소한 무엇의 완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신과 인간은 작품의 디테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디테일 하나하나에 임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 동거하는 것일지 모른다. 악마를 찾든 신을 찾든, 디테일을 고민하는 인간은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상국 논설실장
그 디테일 속에서 신과 악마가 싸워 놀라운 신의 광휘를 증명하는 인간이야 말로 거장이란 이름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디테일 속에서 인간은 흔들리면서 그 신성의 사소하고 사소한 무엇의 완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신과 인간은 작품의 디테일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디테일 하나하나에 임하는 인간의 마음 속에 동거하는 것일지 모른다. 악마를 찾든 신을 찾든, 디테일을 고민하는 인간은 더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