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D변신은 무죄] 새 자전거 탄 서른살 ‘빈폴’…K 패션 감성 품었다

2019-10-15 18:36
자전거 로고 바꾸고 새 한글서체 개발
한국적 정체성 가미해 글로벌 진출

빈폴·헤지스·폴로·타미힐피거·라코스테 등 대부분의 트래디셔널 캐주얼(TD) 브랜드들이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다. 10~20년이 훌쩍 넘은 장수브랜드인 만큼 노후화 이미지를 벗고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다만, 헤리티지 이미지를 유지해 기존 고객 이탈을 막으면서도, 젊은 고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점은 여전히 고민거리다. 브랜드와 제품을 기본으로 가격, 이미지, 마케팅 전략, 매장 시스템, 판매 방식 등에 저마다 변화를 주는 TD브랜드들의 시도를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국민 브랜드’로 불려온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TD) 1위 빈폴(BEANPOLE)이 30주년을 맞아 이름만 빼고 모든 것을 새롭게 바꾼다. 빈폴은 ‘다시 쓰다’ 프로젝트를 통해 상품, 매장, 비주얼 등에 한국적 클래식을 입혀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쳤으며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 위한 캡슐라인 ‘팔구공삼일일(890311)’도 출시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빈폴을 리뉴얼 해 국내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 1위 자리를 굳히고, 2023년까지 중국·베트남은 물론 북미, 유럽까지 사업을 확대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최근 밀레니얼·Z세대가 소비 주축으로 떠오르는 시장 환경을 고려, 브랜드에 대한 신선함을 더해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도 신규 고객을 유입시키려는 차원에서 브랜드 리뉴얼을 단행했다는 게 삼성물산 패션부문 측 설명이다.

박철규 삼성물산 패션부문장(부사장)은 15일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 일진전기 공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쟁에서 이겼다, 철모의 끈을 더욱 졸라매라’는 일본 속담을 인용하며 “빈폴이 30년동안 국내 트래디셔널 ‘넘버원’ 자리를 차지해왔지만, 방심하지 않고 100년 넘게 영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고자 한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이 언론과 소통한 적은 취임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이번 리뉴얼에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박 부사장은 “빈폴은 저희에게 굉장히 소중한 브랜드”라면서 “빈폴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는 저희의 노력을 지켜봐달라”고 강조했다.

정구호 고문(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왼쪽)과 박남영 빈폴사업부장(상무)가 15일 인천 일진전기 공장에서 캡슐라인 ‘팔구공삼일일(890311)’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패션부문 제공]


새로 태어난 빈폴은 서양 문물과 문화가 한국 정서에 맞게 토착화 되며 만들어진 1960~1970년대를 조명했다. 기자회견 장소도 콘셉트를 잘 소화할 수 있는 1968년 설립된 일진전기 공장터에서 진행됐다. 때로는 영국 전통에서 뿌리를 찾았고, 한때는 미국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모티프로 가져왔지만 이제는 빈폴 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는 목표다.
 
공장 한켠에선 리뉴얼 된 △빈폴맨△빈폴레이디스△빈폴키즈△빈폴골프△빈폴엑세서리 매장이 마련됐다.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 한글 디자인 뿐 아니라 당시의 건축과 생활공간 등을 담은 매장과 상품이 눈에 띄었다. 자음 모음을 활용해 ‘빈폴 전용 서체’를 만들었고, 이를 활용한 한글 간판도 공개했다. ‘ㅂ’, ‘ㅍ’ 등의 자음을 체크 패턴에 적용해 독창적 스타일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빈폴의 상징인 자전거 로고도 현대적인 재해석을 거쳤다. 앞 바퀴가 큰 자전거 ‘페니 파싱’의 형태는 유지하면서 간결한 미학을 내포해 바퀴살을 없앴다. 체격과 머리스타일, 자전거를 타는 각도 등 동시대적인 디자인이 반영됐고, 여성과 어린이 로고까지 자수와 프린트로 재탄생됐다.
 
이번 리뉴얼을 도맡은 정구호 고문(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은 “우리나라만이 보유하고 있는 정서, 문화, 철학 등 한국의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한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를 만들자는 취지”라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를 모토로 빈폴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유지하는 한편 한국의 자랑스런 문화와 자긍심을 상품뿐 아니라 매장, 서비스 등에 세련되게 담았다”고 말했다.
 

박철규 삼성물산 패션부문장(부사장)이 15일 기자회견에 앞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위사진은 새로 바뀐 빈폴 자전거 로고. [사진=서민지 기자]


빈폴 론칭 시기인 1989년 3월 11일에서 따온 글로벌 전용 상품 ‘890311’ 라인 매장도 내놓았다. 밀레니얼·Z세대 타깃 라인으로, 한국의 대표 꽃인 오얏꽃을 상징화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가격은 기존 빈폴 라인 대비 10~15% 낮췄다. 890311은 일부 빈폴 매장과 SSF몰 및 팝업스토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정 고문은 “기존 빈폴에 젊은 사람들의 옷을 걸어놓는 순간 빈폴의 코어 고객들은 사라지고 매출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서 “그러나 젊은 세대들에게 빈폴 인지도를 높이고 브랜드 노후화를 막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요즘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을 반영한 옷을 제안한 라인”이라고 설명했다.
 
​890311을 발판 삼아 글로벌 브랜드로 나아가겠다는 야심도 내비쳤다. 미국, 유럽 국가 진출을 목표로, 이번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기간 해외 바이어들과 접촉을 넓힐 방침이다. 박남영 빈폴사업부장(상무)는 “중국 이외 국가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것”이라면서 “국가별로 포지셔닝 포인트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홀세일, 디스트리뷰터십 등을 구분해서 전략을 세워 접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빈폴이 이날 공개한 리뉴얼 상품은 2020년 봄·여름(S/S) 시즌부터 적용하고, 해외 진출 역시 내년부터 방아쇠를 당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