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칼럼] 북미협상 삐거덕 ..김정은 '부산해법'?
2019-10-15 05:00
6월 말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후 여름 동안 탐색전을 거친 후 가을의 문턱에서 북·미 실무협상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빈손 회담이었다. 북한의 김명길 대표는 회담 직후 미국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비난하며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숙고할 것을 권고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북한의 회담 중단 선언은 여러 가지를 고려한 포석으로 여겨진다.
북한은 하노이회담 실패의 충격을 만회하기 위해 봄부터 여름까지 절치부심하며 치밀하게 대응책을 모색해 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하노이회담에서 제재완화를 중점적으로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이것은 북한이 제재효과가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되었으며, 미국이 제재를 더욱 중시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체제안전을 요구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체제안전이 비핵화의 조건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였다.
북한은 미국의 협상 담당자를 비난하고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는 한편, 실무협상의 시기와 조건을 저울질하면서 몸값을 높이고자 했다. 9월이 되어서야 북한은 실무협상 재개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회담 준비가 마무리되었다는 것을 시사하였다.
북·미 스톡홀름 협상을 앞두고 양측이 절충안에 합의할 것이라는 기대가 대두하기도 하였다. 북한이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핵시설 동결, 검증 등을 받아들이는 대신, 상응조치로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선언, 섬유·석탄 수출의 한시적 허용 등을 교환하는 타협안이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실무협상에서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새 판을 짜는 전략을 택했다. 이것은 북한의 전형적인 기선제압 전술이자 벼랑끝 전술이며, 판 흔들기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하노이회담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협상 고지를 장악하기 위해서 새 판을 짜려고 한 것이다.
북한은 상황과 전략적 고려에 따라 체제보장의 내용 가운데 강조점과 우선순위를 달리한다. 북한도 체제보장이 매우 광범위하며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톡홀름회담에서 북한은 일단 자기들이 선제적으로 실시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미국이 상응조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체제보장을 위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완전 중단, 미 전략무기 배치 중단, 한국의 F35A 등 신무기 도입 중단 등을 중점적으로 요구하였다. 또한 북한은 발전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제재의 일괄해제를 요구하였다.
북한은 연말까지가 협상시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에게 새로운 셈법을 거듭 요구하였다. 또한 북한은 협상 결렬시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할 수 있다는 압박수단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톡홀름 실무협상은 새로운 판짜기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북·미 실무협상은 비핵화 조치의 아이템과 체제보장의 아이템을 테이블에 올려 놓고 교환가격을 저울질하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 한·미는 스톡홀름회담의 내용을 공유하고 실무협상 재개방안, 3차 북·미정상회담 개최방안 등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해야 한다. 그리고 북·미 협상의 다음 라운드를 위해 비핵화와 체제보장이 단계적으로 맞물리는 대차대조표를 작성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체제보장의 세부 사항을 어떻게 교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한편,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 북·미실무협상 결과 및 향후 전망에 대한 견해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11월 부산에서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함으로써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는 카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