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NOW] 김종갑 한전 사장의 빛바랜 취임일성...'공공성과 기업성의 실종'
2019-09-27 16:14
- 지난해 4월 취임사에서 "공익성과 기업성의 균형" 강조
- '공익성'은 '정부 부합성'과 달라…한전에서 고민하는 '공익성' 안 보여
- '여름철 특수' 제외하면 연쇄 적자…누진제개편·한전공대 등 출연금↑
- '공익성'은 '정부 부합성'과 달라…한전에서 고민하는 '공익성' 안 보여
- '여름철 특수' 제외하면 연쇄 적자…누진제개편·한전공대 등 출연금↑
민·관을 두루 걸친 경력에서 나온 비전이었다. 그는 제17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산업정책국장, 차관보, 특허청장 등을 역임한 데 이어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내는 등 30년 이상을 공직에 몸담았다. 이후 하이닉스반도체 대표이사 사장, 지멘스 대표이사 회장 등을 맡으며 민간기업 경영도 이끌었다. 이 같은 이력을 기반으로 김 사장은 취임 당시 한전의 '공익성과 기업성의 균형'을 누구보다 잘 이끌어낼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1년 5개월이 지난 지금, 그가 강조했던 균형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기업성'이 실종됐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 "직전분기(2017년 4·4분기) 영업적자가 말해주듯 재무상태는 좋지 않다"며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까지 '비상경영'을 해 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전은 여전히 적자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취임한 이래 한전이 흑자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3분기(1조3952억원)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여름철 전력판매수익이 늘어나는 '계절적 특수효과'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 직후 한전 경영실적은 △-7885억원(2018.4분기) △-6299억원(2019.1분기) △-2986억원(2019.2분기) 등으로 다시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여기에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으로 약 3000억원, 한전공대 설립으로 '1차 출연금' 600억원을 지출했다. 특히 적자 속에서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을 의결하면서 김 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은 한진 소액주주로부터 업무상 배임죄로 고발되기도 했다.
이 같은 '기업성' 실종으로 인해 한전 주가는 지난 2016년 6만3700원으로 최고가를 찍은 이후 줄곧 하향세다. 27일 마감한 한전 주가는 2만5750원으로, 52주 최저가(2만3850원)를 소폭 상회하는 수준이다. 한전은 공기업이지만 민간 지분율이 49%에 달하는 상장회사이기도 하다. 지난 2017년 말 기준 30%를 상회하던 외국인 지분은 올해 6월 기준 26% 수준으로 낮아졌다.
'공익성' 측면에서는 김 사장만의 색깔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한전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탈원전(에너지전환)에 따른 연료값 상승 △여름철 누진제 완화 △한전공대 설립 등은 모두 정부 정책의 일환이다.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와 또 다른 관점에서 '에너지 대계(大計)'를 고민하는 게 한전의 역할이기도 하다.
한전이 바라보는 '공익성'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명확하지가 않다. 일례로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과 관련해 한전 측은 "이미 2016년 말에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한 바 있어 아직 개편 효과도 충분히 측정되지 않았다"며 "추가적인 개편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불과 석 달 정도가 지나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요금 누진제 TF'를 꾸리자 한전은 곧바로 추가 누진요금제를 도입했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1만원 정도를 깎아주기 위한 정부의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에 공기업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며 "국민들은 내돈 만원을 덜 내기 보다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을 더 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갑 사장은 지난해 7월 '두부값(전기)이 콩값(원료)보다 싸다'며 한전이 처한 구조적 문제에 대해 고민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같은 '소신발언' 이후 그의 색깔은 다시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오랜시간 공직에 몸담은 탓에 정부가 내놓는 가이드라인이 '공익성'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소신발언'이 통하지 않는 구조에 체념을 한 것일까.
김 사장이 한전 취임사에서 공언한 '비상경영을 통한 수익성 개선', 나아가 '공익성과 기업성의 균형'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