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석 칼럼] 위기극복의 핵심은 '사람'이다

2019-09-26 08:25

 

[윤원석 교수]


“한국의 교육수준을 정말 닮고 싶습니다. 그게 나의 꿈입니다.” 콜롬비아의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이 (필자가 참석한) 한-콜롬비아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콜롬비아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해 경제를 키우고 있는 남미의 다크호스 같은 나라다. 사회주의 포퓰리즘으로 쫄딱 망한 이웃나라 베네수엘라와 대조된다. 산토스 대통령의 말은 단순히 우리 교육을 배우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보다는 아무 자원이 없는 한국이 오로지 ‘인적자원의 힘’으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지혜를 배우겠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DNA는 참으로 놀랍다. 경제적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빨리 극복했다. 국민, 기업, 정부가 혼연일체가 되어 위기극복에 나선 결과였다.

그렇다면 최근 세계 각국이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 대한민국 인적자원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될까.

지난해 11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인재경쟁력 종합순위를 보면 34위였다. 전년도 39위보다 5계단이 올랐지만 여전히 2015년의 32위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특히 세부 평가 지표를 보면 국내인재에 대한 투자와 개발은 20위인 반면, 해외인재에 대한 활용(Appeal)은 49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독일의 종합순위를 보면 각각 12위, 10위에 머물고 있으나 해외인재활용은 2위와 6위로 최상위권이다. 미국과 독일이 전 세계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럽 선진국들의 인재경쟁력도 대단하다. 인재경쟁력 종합순위 1~5위에 오른 스위스, 덴마크,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가 모두 유럽이다.

제4차 산업혁명을 보는 관점은 인더스트리 4.0과 같은 스마트팩토리, 5G 등 통신혁명에 따른 초연결사회, ICBM(사물인터넷·클라우드·빅데이터·모바일)과 AI(인공지능) 등 기술혁신에 따른 산업의 융합 등으로 다 다르다. 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게 바로 혁신적인 인재, 즉 ‘사람’이다.

기술발전과 혁신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핵심은 역시 ‘사람’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인류의 생태계를 바꾼 스티브 잡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벗어나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빌 게이츠, 새로운 유통채널을 만든 제프 베조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창업가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보다도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국적, 성별, 나이, 종교를 불문하고 과감히 영입하고 활용한 데 있다.

미국, 캐나다, 스위스, 덴마크 등은 국가 차원에서 글로벌 인재 영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 모든 초점이 인재 유출(Brain Drain)을 막고(Brain Retain), 나갔던 인재를 유입하는 인재순환(Brain Circulation)에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 인재의 풀을 확대하여 기업, 사회, 국가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가용성(Readiness)을 잘 갖추도록 한 것이다.

인재경쟁력의 세번째 평가지표인 가용성이 우수한 국가는 스위스, 싱가포르, 네덜란드, UAE, 캐나다 등이다. 우리나라는 34위로 중국의 32위보다 낮다. 중국의 종합순위는 2014년 44위에서 39위로 꾸준히 상승 중이며, 해외 고급인력 유치 분야에서는 28위로 우리나라의 49위보다 21계단이나 높다. 실제로 중국에는 바이두 창업자인 리옌훙처럼 유학하거나 해외기업에 근무한 후 중국으로 돌아와 창업을 하는 인재순환이 활발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08년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정부차원에서 ‘글로벌 우수인재 유치 전략’을 수립하고 KOTRA에 글로벌 인재 정보 제공과 유치를 위한 ‘콘택트 코리아(Contact Korea)’를 출범시켰다, 이와 함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복수국적을 인정하는 법이 2009년에 통과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정권이 교체되어 오면서 국내 취업난으로 인해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던 게 현실이다.

한국인의 폐쇄성은 우리 특유의 ‘집단주의’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이 출신국이 다른 외국인에 대해 갖는 ‘사회적 거리’를 측정한 바에 따르면 아직도 이민족을 ‘한국사회의 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조사 자료가 있다. 우리 사회 근저에는 개인보다는 민족이나 국민을 단위로 하는 ‘집단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주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단결의 효과는 있지만 ’우리가 아닌 사람‘을 배제하는 역효과도 있다. 이렇게 해서는 좋은 인재를 뽑거나 활용하기 힘들다. 연결성과 네트워크 중심의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케케묵은 ‘폐쇄적 공동체의 사회’는 지속적인 발전이 어렵다.

대한민국은 이미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다문화 가구는 33만5000가구, 가구원은 100만명에 달했다. 2017년 재외동포는 740만명에 달하고 있다. 인재의 글로벌화 네트워크 자원은 이미 풍부하게 갖춰져 있다. 그런데도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글로벌 인재 육성 및 확보에 대한 전략은 없고 입시제도 개편 등 단기적 처방만 난무하다.

글로벌 인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 기업들이 투자를 할리 만무하다.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 대비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는 이미 3배 이상에 달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증거다. 국가나 기업이나 개인이나 ‘열린 사고, 열린 행동’이 있을 때 발전할 수 있다. 전 세계의 혁신 인재들이 한국에서 창업하고, 우리 청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지역전문가가 되어 우리 기업의 해외진출을 주도하는 핵심인재로 육성해야 한다. 글로벌 인재의 유치와 육성, 여기에 대한민국의 모든 미래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