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DMZ철책 '멧돼지 구멍'은 막았나, 국내 돼지열병 쇼크
2019-09-17 14:31
지난 7월 30일 기겁할 만한 뉴스 하나가 보도됐다(OBS 경인TV).
같은 달 20일 정오쯤 경기도 파주시는 DMZ에서 GOP 철책 쪽으로 멧돼지 한 마리가 걸려 있다는 제보를 받고 야생생물관리협회(경기지부)에 이 일을 처리할 엽사(獵師·사냥꾼) 2명을 의뢰해 보낸다. 엽사들이 현장에 가보니, 멧돼지는 이미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고, 철책 밑에 있는 수로(水路) 창살 아래 철망으로 들어와 갈대밭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엽사들이 다가가자 멧돼지는 북한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DMZ에서 멧돼지들이 자유롭게 오간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그동안 우리 군과 정부는 철책이 있어서 멧돼지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해왔으며, 하천을 통한 멧돼지 침투에 대한 방어책도 강구해놓고 있다고 밝혀왔다. 그것이 얼마나 허술하게 뚫리고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지 한달 반 만에 우려가 현실이 됐다.
# 돼지열병 감염경로 분석해보면
9월 16일 오후 6시 파주시의 양돈농장에서 어미돼지 5마리가 고열증상을 보이며 죽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국내에 발생한 사실을 이튿날인 17일 공식확인했다. 이 돼지농장 반경 3㎞ 이내에 다른 양돈농가는 없다. 농장주인은 잔반 급여(돼지열병 주요 발병 경로)를 하지 않았으며 사료만을 먹였다. 지난 석달간 농장 관리인인 외국인노동자 4명 중에서 외국에 다녀온 사람도 없었다. 이 질병의 잠복기는 3일에서 21일까지다. 모돈(母豚)에서만 발생된 것으로 보아 전염 초기상황으로 보인다.
이 질병은 어디서 어떻게 전염되었을까. 전염경로는 대개 세 가지다. 첫째는 병에 걸린 돼지나 돼지생산물을 통한 직접 오염이다. 질병 발병지역을 다녀왔을 때 가능한 전염이다. 실제로 지난 3월 14일 중국국적 여행객이 한국으로 들여온 중국산 돼지고기 가공품(소시지와 햄버거)에 돼지열병 바이러스 유전자가 나오기도 했다. 둘째는 오염된 잔반을 먹였을 경우다. 이 바이러스는 고기를 얼린 상태에서 1000일을 버텨내고 소금으로 절여도 1년을 산다. 셋째는 멧돼지를 통한 경우다. 첫째와 둘째 경로의 경우, 농장주인이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기에 이를 제외하면 멧돼지의 경우가 남는다.
# 하루 15㎞ 이동하는 전염동물, 멧돼지
북한은 지난 5월 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돼지열병 발병을 보고했다. 자강도 우시군 북상협동농장에서 5월 23일 신고되어 25일 확정됐다는 것이다. 자강도는 한반도 북서부의 압록강 중류에 있는 도(道)로, 중국을 경계로 하고 있는 곳이다. 질병 확진지가 휴전선에서는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이라 남북 간의 인구이동으로 인한 오염은 발생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멧돼지의 경우는 다르다. 이 야생동물은 하루 최대 15㎞를 이동한다.
멧돼지는 스스로 돼지열병에 감염되는 경우는 없지만, 이 질병을 옮기는 무서운 전염경로다. 최근 멧돼지 개체수는 급속히 불어 남한에서만 30만 마리에 이른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이 멧돼지가 돼지열병을 옮기기 시작하면 어마어마한 재앙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한 실정이다.
# 정부 "접경지역이 DMZ로 차단돼 유입 가능성 낮다"
북한 돼지열병 발생으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던 지난 6월 정부는 북한 멧돼지를 통한 질병 유입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프랑스나 독일과는 달리 접경지역이 DMZ로 차단되어 있어 야생멧돼지로 인해 ASF가 유입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다만 과거 1996년 8월 한강하구에 북한 소가 산 채로 떠내려오고 연평도에 멧돼지가 유입된 경우가 있어서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정부는 강원도와 경기북부 등 접경지역에 대한 멧돼지 예찰(豫察)을 강화하고 있으며, 포획단을 활용해 질병 예방차원의 사전포획 강화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6월 8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강원 철원군의 민통선 지역을 방문했을 때, 신상균 육군3사단장은 “민통선 멧돼지 개체수를 통제하기 위해 엽사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이튿날 국방부는 휴전선을 넘는 멧돼지를 포획하기 어려운 경우, 사살을 허용하는 돼지열병 대응지침을 내놓는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를 바탕으로 ‘북한 야생멧돼지 식별 시 대응지침’을 만들어 휴전선 인접부대에 전달했다. 군사분계선 남쪽 2㎞ 후방 남방한계선 철책을 넘는 멧돼지는 사살하고 사체는 방역기관에서 처리토록 하는 지침이었다.
# 지난 7월 "돼지열병 항체가 이상급증"
7월 4일 농식품부는 이재욱 차관 주재로 돼지열병 관계부처 협의체 2차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 민간전문가는 “그간 DMZ 야생멧돼지 감시를 해온 결과, 북한 멧돼지의 남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밝힌다. 그런데 7월 18일 한 신문(세계일보)은 올들어 멧돼지에서 돼지열병 항체가 이상하게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올 상반기 멧돼지에서 돼지열병 항체가 양성으로 밝혀진 것이 113건이 나왔으며, 항원이 양성으로 밝혀진 것도 6건이 나왔다(김현권 민주당 의원이 제공한 ‘야생멧돼지 돼지열병 검출 현황’ 농식품부 제출자료)”는 것이다.
기사가 나오자 농식품부에서는 북한과의 접경지역에서 돼지열병 항원과 항체의 검출이 늘긴 했으나, 이 바이러스가 북한에서 넘어온 것으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냈다. 이 신중론이 나온 지 열흘 남짓 만에 방송사의 파주 DMZ 멧돼지 출몰 현장 뉴스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탈북' 멧돼지에 대한 특별한 조치는 보이지 않았고, 같은 지역의 돼지농장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했다. 정부는 그제서야 돼지열병 위기경보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올렸다.
# 불가피한 발병이었나, 방심에 뚫린 방역이었나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아직도 발생경로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원인을 알아야 대응책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정부는 일단 급히 첫 발생 농장의 돼지 3950마리를 살처분했지만, 잠복 기한( 21일)까지 어디서 어떻게 다시 출현할지 몰라 조마조마하게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됐다.
발병 농가가 있는 지역은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5km 떨어진 한강과 공릉천 합류지점과 가까우며 북한과 1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최근 태풍으로 접경지역에 많은 비가 내렸기에 멧돼지가 떠내려왔을 가능성도 있다. 그 와중에 DMZ 하천지역의 멧돼지 출몰 구멍은 어떻게 대비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 돼지열병 1년1개월이 지난 중국은 지금
돼지열병 발병은 '대재앙'급이다. 2018년 8월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랴오닝성에서 돼지열병이 처음 발생했던 중국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년 1개월이 지난 현재 31개성의 직할시와 자치구 모든 곳에 번진 이 질병은 중국 축산농가를 거의 쓸어버렸다. 돼지고기 값(지난 8월)은 작년 대비 46.7% 올랐다. 남부 푸젠성과 광시성엔 1인당 구매량 제한조치가 실시됐다. 중국은 세계 전체 돼지 사육두수 9억 마리의 절반을 키우고 있는 나라다. 매달 2400만 마리를 도축하는 양돈 초대국이기도 하다. 작년 기준으로 이 나라는 5496만t의 돼지고기를 생산했는데, 소비량은 그보다 더 많은 5624만t이다. 작년에 중국은 160만t의 돈육을 수입했다. 이런 나라에서 돼지열병이 창궐했으니 세계 돈육시장은 초토화될 위험에 처했다.
한국은 어떤가. 2008년 돼지고기 생산량은 92만t이고 자급률은 64%다. 소비량이 143만t쯤 된다. 51만t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발생한 돼지열병은 가뜩이나 힘겨운 경제를 더욱 주저앉힐 악재일 수밖에 없다. 이 엄청난 일이 불가항력적인 발병이었는지, 방심에 의해 방역이 뚫린 것인지 되짚어볼 필요도 있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