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주류의 눈으로 조국을 보라
2019-09-02 10:10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조 후보자가 심각하게 도덕적 비난을 받거나 법을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는 일을 한 게 단 한 개도 없다”고 했다. “별건 수사로 가족들을 입건해 포토라인에 세우고 하는 건 스릴러에서 악당이 주인공을 제압하지 못할 때 쓰는 수법”이라고도 했다. 30일엔 조 후보자를 “위선자, 피의자라고 하는 것은 다 헛소리”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조 후보자는 2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에 관한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그럼에도 유 이사장의 발언은 남는다.
조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야당과 시민단체의 고발·고소는 10건이 넘는다. 그중 몇 가지만 보자. 조 후보자의 딸이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두 차례의 유급에도 6학기 연속 장학금으로 총 1200만원을 받은 건 ‘묵시적 청탁’에 의한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될 소지가 있다. 조 후보자가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경제공동체의 일원으로 부양책임이 있는 가족(딸)이 받았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준 딸의 지도교수는 그 후 부산의료원장으로 갔고, 그와 아는 사이인 다른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주치의가 됐다.
부산대 의전원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에서 제기된 문제들, 예컨대 인턴 선발이나 논문의 저자 기재 등 이른바 조 씨 가족의 ‘스펙 쌓기’가 해당 대학의 공정한 채용이나 입학을 방해한 걸로 판명되면 업무방해죄가 된다. 조 후보자 일가가 운영해온 학교법인 웅동학원에 대해서도 조 후보자는 자유한국당에 의해 업무상 배임혐의로 고발됐다. 동생의 전처가 2006년 웅동학원을 상대로 공사비 상환 소송을 했을 때, 조 후보자를 포함한 당시 학원 이사들이 두 차례나 무(無)변론으로 대응해 패소하는 바람에 학원이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조 후보자 가족이 10억5000만원을 투자한 사모펀드의 운용사 코링크PE와의 관계도 논란거리다. 이 펀드가 사실상 조 후보자 가족의 투자자산으로 판명이 나면 사모펀드라는 보호막이 걷히게 된다. 그럴 경우 이 펀드가 투자한 기업이 주로 지자체들의 관급공사를 수주해 매출을 올렸다면, 코링크PE의 실소유자로 알려진 조 후보자의 오촌조카의 역할에 따라서 조 후보자도 자본시장법 위반, 뇌물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된다. 오촌조카와 관계자들은 이미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충 훑어보아도 이 정도다.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유 이사장이 강변한 것처럼 “위법 행위가 단 한 개도 없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엉뚱하게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조국을 꺾어야 한다는 욕망이 보도를 지배하고 있다”면서 기자들이 “집단창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조국만큼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었던 소위 명문대학 출신의 많은 기자분들이 분기탱천해서”라고 했다. 기자들이 시기심 때문에 조국을 공격하고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유 이사장에 따르면 “조국은 유복한 집안에, 16살에 법대(서울대 법대)에 갔고, 얼굴도 배우 같고, 머리숱까지도 수북한” 인물이다. 허나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잘났건 못났건 기자들은 관심이 없다.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는 의혹과 진실 규명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집단창작”이라니, 지금 이 순간도 피 말리는 취재경쟁 속에서 밤잠을 못 잘 기자들에 대한 모욕일 터이다. 유 이사장은 이런 말도 했다. “하다 못해 조국 수석이 흰색 봉투에 이력서든 돈이든 넣어서 누구를 줬어야 그게 뇌물이지 무슨···”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상고심에서도 인용된 게 ‘묵시적 청탁’이다. 유 이사장은 결과적으로 조 후보자에 대한 찬반 논쟁을 본격적인 진영 간 대결로 확전시키는 데 기여한 꼴이 됐다. 그가 포문을 열자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등도 일제히 조국 지키기에 나섰고, 야당의 반발도 더 거세졌다.
유 이사장은 진보 진영의 잠재적 대권주자로 꼽힌다.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민주당의 대선 승리공식이라는 ‘영남 후보+호남 지지’에 부합되는 정치인 중의 하나다. 그래서 더 실망스럽다. 국회의원도 했고 장관(보건복지부)도 했다. 나이도 올해 환갑이다. 머리 또한 좋기로 소문났다. 어느 모로 보나 국가의 지도자급 중견정치인으로 존경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도 그의 언사는 독선적이거나 오만으로 비칠 때가 많다. 안해도 될 말, 안했으면 하는 말도 그냥 던진다. 비단 필자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 것이다. 이 성마름과 분노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혹여 비주류 의식 때문은 아닐까.
강준만은 2008년 정치평론집 '아웃사이더 콤플렉스-노무현 현상의 축복과 저주'에서 아웃사이더들의 특질로 △과장된 피해의식 △권모술수의 내재화(자신은 진정성의 발로라고 주장) △만병통치용 면죄부, 약자(弱者) 의식 △모든 걸 다 거는 ‘올인’의 상례화를 들었다. 그 함의는 지금도 곰씹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강준만은 10여년 전에 벌써 요즘 화두인 386세대의 ‘가치 독점’ 논란까지 예견했던 것 같다. 아웃사이더는 곧 비주류다. 내가 보기에는 유시민은 여전히 스스로를 비주류로 여기는 듯 하다. 자신은 언제나 약자이고, 상대는 언제나 거악(巨惡)이다. 기득권과 강자(强者)의 세계에 속하기를 포기한 데 대한 경의, 그 이상으로 그의 비주류 콤플렉스는 우리 사회에 부담이 되고 있다. 그새 세상은 변한 것이다.
그는 더는 비주류가 아니다. 주류다. 그것도 대권주자로 거론될 만큼 핵심 주류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호언대로 어쩌면 20년, 100년을 집권할 수도 있는 세력의 일원이다. 그런데도 왜 비주류 행세를 하는가. 천성 탓인가, 아니면 그렇게 자신을 위치시키는 게 여러모로 유리해서인가. 경로야 어떻든 정권을 잡았으면, 다시 말해 주류가 됐으면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 안보, 경제, 민생 등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주류는 주류답게 행동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예컨대 아웃사이더로서 한·미동맹을 볼 때와 주류로서 한·미동맹을 볼 때는 달라야 한다.
조국 문제도 그렇다. 일방적으로 비호해서는 안 된다. 비주류일 때나 어울리는 언사로 적대감을 부추기는 일은 더더욱 참아야 한다. 청문회가 열려야 한다는 유 이사장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청문회와 검찰 수사 결과를 놓고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게 주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