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홍콩 시위 두고 신경전...중국선 연일 '美기업 때리기'

2019-08-13 08:51
홍콩 시위 두고 과격해지는 中, 美기업에 '사드식 압력'
美,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중국에 평화적 해결 촉구

홍콩에서 석 달째 이어지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계속되자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의 대응 방식이 갈수록 과격해지는 모습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홍콩 사태의 배후로 '미국'을 지목하고 나선 가운데, 중국 내 애국주의 열풍으로 미국 패션 브랜드들이 중국인으로부터 '보이콧(불매운동)' 당할 처지에 놓였다.

일각에선 중국이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국에 중국인 관광객 중단 등의 압력을 넣었던 것처럼 홍콩에도 '사드식 압력'을 넣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홍콩, 대만을 별도 국가로 표기한 코치 티셔츠. [사진=웨이보 캡처]

◆베르사체에 이어 코치·캘빈클라인도 도마 위

12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에 따르면 미국 브랜드 코치(COACH)가 자사 제품과 홈페이지에 홍콩과 대만을 중국의 일부 도시가 아닌 국가로 표기해 중국에서 논란이 일었다. 

문제가 된 티셔츠에는 '시카고, 미국' '밀라노, 이탈리아'와 같은 글로벌 유명 도시와 국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상하이와 베이징이 중국과 함께 분류된 것과는 달리, 대만과 홍콩은 '타이페이, 대만' '홍콩'처럼 독립된 국가인 것처럼 표기됐다. 또 코치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홍콩과 대만을 별도 국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분류했다. 

이는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베르사체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한 티셔츠로 논란을 빚어 사과한 지 24시간도 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전날 베르사체는 최근 티셔츠에 홍콩과 마카오를 중국과 분리해 국가로 표기했다가 중국 내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사과했다.

코치 브랜드 홍보대사인 중국인 유명 모델 류원도 "코치의 이러한 행동은 중국인의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쳤다.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며 관련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로 중국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코치는 문제가 된 티셔츠를 회수하고 홈페이지 수정 작업에 나섰다. 코치 측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면서 "이러한 잘못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미국의 패션 브랜드인 캘빈클라인(CK)도 직격탄을 맞았다. 코치와 마찬가지로 공식 홈페이지에 홍콩을 별도 국가로 표기했다가 중국 누리꾼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이에 캘빈클라인측은 "미국 사이트에서 국가 항목 구분에 실수한 것에 유감을 표하며 중국 영토에 맞게 수정하도록 하겠다"며 "캘빈클라인은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존을 존중한다"고 사과문을 올렸다. 

베르사체에 이어 코치, 캘빈클라인에서까지 홍콩, 대만에 대한 국가 표기 문제가 논란이 되자 중국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중국 관영언론들은 미국 기업 '때리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12일 "베르사체에 이어 코치, 캘빈클라인도 티셔츠에서 홍콩과 대만을 국가로 분류했다"면서 "이들 기업은 어리석은 실수로 중국인들의 분노를 일으켜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난항을 겪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고 사과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라면서 "만약 정말로 중국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들(중국인)의 정서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중국내 강경 민족주의 성향 관영매체인 환구시보 총편집인 후시진(胡錫進)도 코치와 캘빈클라인의 행동을 지적하며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 법에 따라야 한다"고 비꼬았다.

그는 "일부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인들이 터무니없이 생떼 부린다고 생각하는 데, 중국인의 행동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홍콩, 마카오를 국가로 표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는 중국의 주권을 해치는 행동이라고도 부연했다. 

이어 중국인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표기를 매우 중요시한다면서 "만약 중국 법을 따르지 않는 다국적 기업이 있다면 규탄할 뿐만 아니라 보이콧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12일 홍콩 국제공항에서 헝겊으로 한쪽 눈을 가린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는 전날 침사추이 지역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 시위 참가자가 경찰이 쏜 '빈백건(bean bag gun)'에 맞아 오른쪽 눈이 실명 위기에 처한 것에 분노해서 벌어졌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美, "폭력 자제해야...세계가 지켜본다"

중국 내 미국 기업의 보이콧 사태가 번지고 중국이 홍콩 사태에 무력 진압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미국은 중국을 향해 홍콩 시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거듭 촉구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영국을 방문 중인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일(현지시간) 영국 관리들과 홍콩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면서 "중국 관영매체가 미국 의원이 홍콩 상황에 개입하는 '검은 손'이라고 비난하는 데, 이는 어이없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과 영국이 홍콩 주권 반환 당시 맺은 협정을 언급하며 "협정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지워진 의무"라고도 부연했다.

미국 상원을 이끄는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 대표도 이날 트위터를 통해 "어떤 폭력적인 단속도 전혀 용납할 수 없다"면서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이 홍콩 시민들의 자치권과 자유를 침해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용감하게 중국 공산당에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달에도 매코널 대표는 상원에서 홍콩 시위에 대해 연설하면서 시위대를 높이 평가하고 현지 경찰을 비난했다. 이번에도 홍콩 사태와 관련해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를 강조하면서 중국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한편, 송환법 반대 시위대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연속 홍콩국제공항에서 시위를 벌였다. 12일 수천명의 시위대에 의해 홍콩국제공항이 점령되고 여객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지만, 13일 오전 일찍 재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에 따르면 공항 대변인은 이날 "탑승 수속 업무가 재개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