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영 칼럼] 한국 안보, 전략적 사유와 전략적 재평가가 필요하다
2019-08-05 13:39
그야말로 잔인한 8월이다. 6월 말, 전격적인 남·북·미 판문점 회동과 3차 북·미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북핵 정국이 답보인 상태에서 곪았던 한·일 갈등이 결국 터졌다. 일본은 안보상의 수출 규제라면서 과거사를 경제문제와 결부시켜 한국을 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해 양국 관계의 기조를 흔드는 공전의 갈등을 유발했다. 북한은 남북이 따로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한국 배제론’을 펼치면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가 가능한 잠수함 공개에 이어 탄도미사일과 신형 방사포를 발사하는 등 한국을 무시하는 무력시위에 열중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연합훈련이라면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고, 러시아 군용기는 영공까지 침범했다. 7월 한반도의 대 혼란 속에서 동북아 안보정세의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갈등 유발의 책임이 어디에 있든 현실은 냉엄하다. 남북 대화는 궤도를 이탈했고, 한·일 갈등은 양국의 역사적 애증관계와 국내정치적 요인에 따라 민족 감정 프레임으로 옮겨 갔다. 북한 관리라는 성과에 집착한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갈등에는 한발을 빼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대한 직접위협이 아니라며 모르는 체한다. 이틈에 중·러는 미국 견제에 동맹 수준의 연대감을 과시하고 있으며 한·미 동맹관계도 과거 같지 않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면서 우리 안보에는 매우 비우호적인 주변 환경이 현실이 되었다.
더 이상 대북 성과를 자랑하거나 설익은 평화를 말할 때가 결코 아니며, 더는 지지 않겠다며 강경한 대일 처방에만 몰두할 상황도 아니다. 주변 환경의 변화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금에 전개되는 주변 각국의 상황 변화에는 당연히 각국의 전술적 입장과 전략적 입장이 공존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여러 가지 있다.
또한 일본의 전략 변화에도 이해가 필요하다. 이번 양국 갈등은 기존의 역사문제 범위를 벗어나 최소한의 묵계가 무시된 채 안보영역으로 확대됐다. 이는 남·북·미간에 전개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과정에서 배제됐던 일본이 한국과의 연계보다는 미·일 동맹 강화와 더불어 대북 직접 접근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일본은 당분간 한국과의 안보협력 범위를 한·미·일 공조 차원에서만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으로 일본을 압박하는 카드는 자칫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깼다는 빌미를 줄 수 있고, 동북아 방어능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미국의 우려를 살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의 전략 인식 변화에도 주의가 요망된다. 현재 미국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북핵 관리’는 별개의 문제다. 북한의 핵· 장거리탄도미사일 실험 중지가 대단한 외교적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북한은 대선 정국에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의 정치적 계산을 이용하면서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자처하면서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북핵이 동결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한·일 중재에 적극적이지 않은 미국의 태도 역시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에 기반한 미국의 대중 견제전략을 미·일 동맹 위주로 끌고 가려는 신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형세는 본질적인 변화기에 진입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과 북만으로는 구축될 수 없다. 한·일 양국 역시 상호갈등을 국내정치 활용에 혈안이 된 나머지 공동의 안보 과제가 있음을 잊거나 부정하면 안 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대안도 없이 기존의 한·미 동맹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는 확고한 한·미 동맹의 유지와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국과 러시아의 세력 확장 억제는 물론 일본의 억지도 잠재울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절박한 안보 현실을 위해 주변 안보환경에 대한 전략적 사유와 전략적 재평가가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