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호 칼럼] 적(敵)의 적(敵)은 내편

2019-07-22 16:06



“미국이 암호화폐와 페이(Pay)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할 수 없게 되면, 우리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자에 의해 암호화폐가 지배되고 말 것이다.”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발행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마커스 대표가 지난주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 담긴 내용이다. 마커스 대표가 말한 ‘우리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자’는 중국을 가리킨다. 그는 왜 뜬금없이 중국을 언급했을까?

페이스북은 정부로부터 사업에 대한 압력을 받거나, 해명을 요구 받았을 때 중국을 자주 거론한다. 지난해 4월 87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발생해 미국 상‧하원에서 공청회가 열렸을 때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의원들에게 중국의 기술 우위를 호소했다. 의원들에게 중국위협론만큼 잘 먹히는 논리도 없다. 적의 적은 내편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적인 중국과 경쟁을 벌이는 페이스북은 미국 편인데 그런 페이스북의 손발을 묶지 말란 얘기다.

'적의 적은 내편'이란 말은 기원전 3세기 고대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재상(宰相) 카우틸랴가 집필한 '실리론(實利論)'에 처음 등장했다. 실리론은 국왕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법을 주로 다뤘는데, "왕의 적과 적대관계에 있는 자는 왕의 편이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됐다.

저커버그뿐만 아니라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페이스북 고위 임원들도 종종 중국위협론을 거론한다. 만약 미국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면, 규제를 받지 않는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미국 기업을 누르고 거대한 힘과 방대한 데이터를 중국 정부가 얻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중국은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대해 미국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중국은 개인정보를 사회통제 목적으로 사용한다. 페이스북 고위 임원들의 주장대로 미국 정부가 미국 기업의 서비스를 규제하면, 중국 IT기업들이 유사 서비스를 출시해 순식간에 시장을 잠식할 수도 있다. 

이처럼 페이스북의 중국위협론은 규제 강화가 결국 중국기업을 이롭게 한다는 점,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저커버그 CEO는 지난해 미 의회 공청회에 참석해 얼굴인식 분야에서 중국이 앞선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AI 개발 분야에서 중국이 힘을 키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원들이 미·중 기술경쟁에 민감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에선 'AI'와 '중국'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최면에 걸리고 만다. 

 


최근 페이스북이 발행을 예고한 암호화폐 리브라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 금융당국의 반대에 직면했다. 

페이스북의 새로운 암호화폐 리브라는 비자, 마스터카드, 페이팔, 우버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아직 자세한 서비스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전 세계 27억명의 페이스북 이용자를 무기로 각국의 통화제도, 금융정책, 금융기관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주 프랑스 샹티이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에서도 리브라에 대해 "최고 수준으로 규제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의장성명이 채택됐다.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금융시장 진출은 국가경제의 근간인 통화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우려에 주요국들이 공감한 것이다. 

페이스북은 리브라에 대한 금융당국의 우려에 대해 각국 정부와 협조해 소비자 보호와 금융 시스템에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중국위협론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중국위협론으로 의회와 정부 당국의 불안감을 키우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주장하는 '공정하고 열린 인터넷 사회'를 만들었다고 해서 중국의 위협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중국위협론을 주장하며 불안감을 조성하기보다 개인정보 유출과 같은 서비스의 악용을 막는 데 더 힘써야 한다. 리브라의 성공적인 발행을 위해서도 자금세탁에 악용되거나 세계 금융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규제당국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이롭다. 페이스북의 이익은 중국의 위협이 아니라 이용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창출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