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영장 기각’에 검찰 발끈... 법조계도 “의아하다”

2019-07-20 16:21
“둘 다 가능한 회계처라라는 것인데 그럼 유리한 것 선택하면 되고 불리하면 바꿔도 된다는 거냐”
검찰 물론 법조계도 ‘갸우뚱’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62)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또다시 기각한 법원의 판단이 도마에 올랐다. 

‘삼성바이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관련 회계처리 및 처리기준 변경이 위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면서 논란이 커지는 분위기다. 회계처리 방법이나 기준에 대해 지나치게 넓은 재량권을 인정한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회계처리 기준의 자의적 변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8월 중순 전에 수사를 마치려 했던 검찰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20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김태한 대표를 비롯해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 전무(54), 재경팀장 심모 상무(51)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명재권 영장담당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기각 사유로 들었다. 김 대표 등 삼성바이오 임원들은 삼성에피스 관련 분식회계·허위공시 혐의와 횡령 등 개인비리 혐의로 영장이 청구됐다. 
 
네 가지 혐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 혐의는 삼성에피스 관련 분식회계 혐의다. 법원은 분식회계와 관련해 혐의가 완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셈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18일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수사과정에서는 처음으로 ‘분식회계‘ 부분에 대해 처음으로 영장을 청구했다. 지금까지 ‘삼성바이오 사건’으로 영장이 발부된 사례는 분식회계와 관련된 혐의가 아니라 ‘증거인멸‘ 때문이었다.
 
검찰은 김 대표 등에 대해 분식회계 혐의로 첫 영장을 청구하면서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하면 첫 번째 인사에서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늦어도 8월 중순까지는 수사를 끝내려 했던 것이 검찰 계획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영장이 모두 기각되면서 검찰의 계획에는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8월 정기인사 전에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수사에 박차를 가해왔다. 오는 8월 인사는 윤 총장이 단행하는 첫인사로 대대적인 보직이동은 물론 신진 세력의 대대적인 고위직 진출이 예상된다. 

삼성바이오 수사팀 역시 한동훈 3차장을 비롯해 상당한 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검찰로서는 갈 길이 더욱 바빠지게 됐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5년 말 자회사인 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바꾸고, 미국 측 합작사가 행사할 수 있는 콜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부채에서 제외하는 수법으로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000억원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2014년 회계처리 당시엔 미국 합작사인 바이오젠의 콜옵션으로 인한 부채를 감췄다가 2015년 말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지자 회계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바꿨다는 것이다.
 
검찰뿐 아니라 증권선물위원회·참여연대 등은 이 같은 편법 분식회계의 목적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무렵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이 부회장이 대주주인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 가치를 부풀렸다는 시각이다.   
 
반면 삼성바이오 측은 “적법한 회계처리였다”며 분식 의혹을 강하게 부인해왔다. 분식회계인지를 놓고 외국에서도 의견이 다르고 금감원도 처음에는 합법적이라고 판단한 바가 있다는 것이 이유다. 법원 역시 삼성의 항변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그렇게 정당한 것이라면 왜 증거가 담긴 서버를 폐기하거나 숨기는 등 조직적으로 인멸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삼성바이오 증거인멸과 관련해 구속된 사람만 9명에 달한다.
 
더구나 조작에 가담한 회계사들까지도 조작을 인정한 마당에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라고 판단한 것은 ‘판단기준이 삼성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되는 경우는 두 방법의 결과에 큰 차이가 없을 때“라면서 “결과가 4조5000억원씩이나 차이가 나는데, 어떻게 둘 다 가능하고 합법적인 처리라고 할 수 있나”라고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법조계도 “법원 판단대로라면 두 가지 방법 중 유리한 쪽을 선택해도 될 뿐만 아니라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회계처리 기준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라며 “‘엿장수 유리한 대로 회계처리를 해도 된다’는 것을 법원이 인정해 준 셈”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20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관계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25일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기각된 뒤 두 번째로 영장이 기각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