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일용의 CEO열전] ⑨ 민수용 드론 시장의 제왕 DJI, 스파이 혐의 벗고 '훨훨'

2019-07-20 09:09
프랭크 왕 DJI 최고경영자
패스트 팔로워 대신 퍼스트 무버... 품질제일주의와 지속적인 혁신으로 전 세계 드론 시장 장악

지난 10일 세계 최대의 드론(무인기) 제조 업체인 DJI가 생산한 정부용 드론이 15개월에 걸친 미국 내무부의 보안 테스트를 통과했다. 드론을 통해 중국으로 정보를 빼돌린다는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자유로워진 셈이다. DJI가 중국 정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민간 기업임이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DJI는 2018년 약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의 매출을 거둔 세계 최대의 드론 제조사다. 중국 심천에 거점을 두고 있는 DJI의 시장 가치는 150억달러(약 17조6000억원, 2018년 기준)에 달한다. 전 세계 민수용 드론시장의 약 70%를 차지하는 등 경쟁사가 따라잡기 힘든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민수용 드론을 넘어 농업·정부용 드론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하늘을 동경한 소년의 끊임없는 도전

이러한 DJI를 만든 인물이 왕타오(汪滔, Frank Wang. 이하 프랭크 왕) DJI 최고경영자다. 그는 1980년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 하지 못 했던 프랭크 왕이 우연히 우수한 성적을 받자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사달라고 조르던 비싼 원격조종 헬기를 선물했다. 하지만 어린 소년이 조종하기에 너무 어려웠던지라 헬기가 툭하면 추락했다. 낙심한 프랭크 왕은 이때부터 자동제어 헬기에 관한 원대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프랭크 왕 DJI 최고경영자.[사진=DJI 제공]


화둥사범대학에 진학해 선생님의 길을 걸으려던 프랭크 왕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길이 아님을 깨닫고 어린 시절 꿈꾸던 자동제어 헬기를 연구하는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MIT와 스탠퍼드 대학 입학에 도전했다. 하지만 불합격이란 쓴잔을 들이키고 만다. 하지만 프랭크 왕은 낙심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 두 대학 못지 않은 명문공과대학인 홍콩과기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홍콩과기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원격조종 헬기의 비행 제어 시스템(Flight Controller) 관련 연구를 매진했다. 비행 제어 시스템은 드론이 눈, 비 등 각종 기상환경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비행하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 기술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향후 DJI와 드론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2005년 과 동기 두 명과 함께 원격조종 헬기의 비행 제어 시스템을 졸업과제로 선택했다. 6개월간 수업도 빠져가며 졸업과제에 매진했지만 시연 단계에서 헬기가 추락하면서 ‘C’를 받고 만다. 유럽 명문대로 유학하려던 꿈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이런 프랭크 왕의 행보를 눈여겨 본 리쩌샹(李澤湘) 홍콩과기대학 로봇기술과 교수가 그를 대학원 제자로 받아들인다. “프랭크 왕이 남들보다 더 똑똑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업적 감각이 뛰어난 건 분명하다”고 말한 리 교수는 이후 DJI의 초기 고문 겸 투자자가 되어주었다. 지금도 DJI 이사회 의장으로 전체 지분의 약 10%를 보유하고 있으며, 프랭크 왕이 에베레스트 산맥에서 드론 횡단을 시도할 때 함께 산에 오르는 등 지금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2006년 그는 중국의 제조업 메카 선전에서 졸업과제를 같이 수행한 동료 두 명과 함께 DJI를 세웠다. 첫 사무실은 침대 세 개만 놓인 아파트였고, 창업자금은 로봇경진대회 우승 상금과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이었다.

◆절대적인 아이디어는 없다, 시장이 원하는 것을 쫓아라

당초 자동제어 헬기에만 매진하려던 프랭크 왕을 드론 시장으로 이끈 것은 한 뉴질랜드 중개상의 조언이었다. 이 중개상은 “자동제어 헬기 구매자의 90%가 카메라 고정장치를 단 다중 프로펠러 비행기(드론)을 산다. 드론이 헬기보다 훨씬 유망한 시장이다”는 취지로 프랭크 왕에게 조언했다. 그는 즉시 회사의 중심 사업을 드론으로 바꿨다.

초기 DJI는 드론 완제품을 생산하던 기업이 아니었다. 당시 드론 시장에는 완제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이 다양한 부품을 조립해 직접 자신만의 드론을 만들어야 하는 DIY(do it yourself) 시장이었다. 주요 고객도 일반인이 아니라 기업, 대학 등이었다. 프랭크 왕은 편집증에 가까운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인물이었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그의 성격에 질린 동료 두 명은 결국 DJI를 떠나고 만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프랭크 왕은 리쩌샹 교수를 비롯한 지인들의 투자와 격려가 없었다면 결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던 프랭크 왕은 미국에서 콜린 귄(Colin Guinn)이라는 사업가를 만나게 되었다. 항공촬영 영상을 만들던 귄은 당시 어떻게 하면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촬영 영상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프랭크 왕과 DJI가 가져온 우수한 비행 제어 시스템이 이러한 귄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콜린 귄은 즉시 DJI의 투자자로 합류했고, DJI 북미 지사장이 되었다. “The Future of Possible”이라는 DJI의 슬로건도 귄의 아이디어다.

2013년 1월 프랭크 왕과 DJI는 당시 드론 시장의 판도를 바꿀 제품을 출시한다. 완벽히 조립된 본체, 모든 설정이 완료된 조종기와 소프트웨어 등을 갖춘 완제품 드론이다. '팬텀'이라고 이름 붙인 완제품 드론은 DIY에 기대고 있던 당시 민수용 드론 시장에 충격을 가져왔다. 팬텀은 당시 막 태동하고 있던 미국과 중국의 민수용 드론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1년 420만 달러에 불과하던 DJI의 매출은 2013년 1억9000만 달러로 30배 이상 급증했다.

팬텀의 성공 이후 프랭크 왕과 귄은 갈라서게 되었다. 당시 귄은 북미 시장에서 DJI의 성공은 자신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여겼다. 자신의 역할이 DJI 북미지사장이 아닌 DJI 혁신담당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업주인 프랭크 왕 입장에선 귄의 행동이 달가울리 없었다. 결국 2013년 5월 프랭크 왕은 DJI 북미 지사의 주식을 인수하면서 귄을 자리에서 내쫓았다. 자리에서 내쫓긴 귄은 DJI의 경쟁사인 3D로보틱스의 투자자로 합류하며 DJI를 견제했지만, 결국 DJI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무인기와 카메라의 결합으로 혁신 주도

팬텀의 대성공 이후 DJI는 카메라 일체형 드론인 ‘팬텀2 비전’을 출시하며 드론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했다. 당시 드론 애호가들은 드론과 카메라를 따로 구매해 직접 조립해야 했고, 이를 번거롭게 여기는 구매자가 많았다. 이를 눈여겨 본 프랭크 왕은 인스파이어 등 카메라 일체형 고급 드론을 출시하며 또 한 번 드론업계의 혁신을 주도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카메라 일체형 드론을 출시하며 프랭크 왕과 DJI는 또 다른 우군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바로 고프로다. 원래 DJI와 고프로는 협업 관계였다. DJI의 드론과 고프로의 액션캠을 활용한 항공 영상 촬영이 드론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프로는 DJI 드론용 호환 부품과 설정을 출시하는 등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프랭크 왕 입장에선 고프로의 액션캠도 언젠가 DJI가 진출해야하는 시장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2014년 4월 DJI는 ‘팬텀2 비전플러스’라는 제품을 출시하며 고프로와의 협업을 종료했다. 팬텀2 비전플러스는 고화질 카메라, 3축 짐벌(촬영시 흔들림을 교정해주는 장비), FPV(1인칭 영상 송출장치) 등 항공촬영에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드론이었다. 무엇보다 고프로의 액션캠을 구매하지 않아도 편리하게 익스트림 스포츠를 촬영할 수 있는 올인원 기기였다.

이후 DJI는 취미용 드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용 제품을 선보이며 패럿, 3D로보틱스와의 격차를 벌렸다. 특히 농업용 드론인 ‘MG-1’을 출시하며 산업용 드론을 향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현재 DJI는 휴대성에 초점을 맞춘 ‘매빅 에어’, 입문자를 위한 취미용 제품인 ‘팬텀’, 전문가용 제품인 ‘인스파이어’, 산업용 제품인 ‘매트리스’ 등과 ‘오즈모’와 ‘로닌’ 같은 촬영용 장비를 판매하며 소비자와 기업이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주고 있다.

◆패스트 팔로워 아닌 퍼스트 무버, DJI가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중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인 알리바바와 샤오미는 각각 미국의 아마존, 한국의 삼성전자와 미국의 애플의 후발주자로 시작해 이들을 좇아가면서 덩치를 키운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다. 반면 DJI는 중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사업 초기부터 시장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DJI가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프랭크 왕의 ‘품질 제일주의’다. 그는 “중국 제품은 싸구려라는 인식을 깨고 싶다.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혁신 제품을 만들어 자랑스럽지 못한 중국의 현재를 바꿀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강조한다. 이 때문에 그는 2015년 4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팬텀3’ 신제품 발표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제품이 자신의 생각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그가 제시한 DJI의 모토가 바로 ‘격극진지 구진품성(激極盡志, 求眞品誠)’, 즉 ‘열정을 가지고 최고를 추구해 좋은 제품을 만든다’다.

두 번째 비결은 세계의 공장 ‘심천’ 지역의 우수한 제조업 인프라다. 중국 심천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드론을 생산함으로써 DJI는 경쟁사보다 원가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는 곧 제품의 가격을 더욱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수한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바탕으로 경쟁자를 몰아내고 드론 시장에서 우위를 굳혔다. 그 결과가 바로 3D로보틱스, 고프로 등 글로벌 경쟁자들의 시장 탈락이다. 다만 이러한 DJI의 전략은 같은 중국 업체들이 그대로 흉내낼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실제로 유닉, 이항, 샤오미 등 중국내 경쟁자들은 DJI 기술과 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후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가격대의 드론을 출시해 DJI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DJI는 유닉에게 자사의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경쟁사 견제도 함께 진행 중이다.

DJI의 전체 지분 가운데 40%를 소유하고 있어 54억달러(약 6조3400억원, 포브스 추산)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적 거부가 된 지금도 프랭크 왕은 자동차 트렁크에 드론을 실은 채 가끔 한적한 곳에서 드론을 날리고 있다. ‘전 세계 하늘을 제패하겠다’는 어린 시절 꿈이 실현될 때까지 그의 비행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