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2019-07-19 16:54
모두가 어렵던 시절, 나눔은 미덕이었다. 그때는 모든 걸 나눴다. 이웃끼리 나눔은 당연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선 콩 한 조각도 쪼갰고, 옷도 물려 입었다. 그때보다 풍족한 지금도 나눔은 격려할 일이다. 일자리 나누기가 대표적이다. 정규직은 기득권을 내려놓음으로써 비정규직과 더불어 산다. 그래서 나눔의 다른 말은 배려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나눔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 국회직 나눠먹기다. 힘 있는 정당끼리 나누고, 또 당내에선 계파끼리 싸운다. 정당 간 노른자위 상임위를 분배하는 게 1차 밥그릇 싸움이다. 상임위가 정해지면 이번에는 당내에서 계파별로 맞선다. 이런저런 특위 설치도 같은 이유다. 원 구성 때마다 되풀이 되는 고질적인 병폐다. 개선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지만 도루묵이다. 나눠먹기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자리를 감투로 여기는 탓이다.
후반기 국토교통위원장 자리를 놓고 볼썽사납다. 한국당 박순자 위원장이 6개월 더하겠다고 버티면서다. 급기야 한국당은 박 위원장을 윤리특위에 회부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위원장 자리가 무엇이기에?’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애초부터 상임위원장 자리를 1년씩 쪼갠 게 화근이다. 국회법(제40조 1항)은 상임위원장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니 1년씩 쪼갠 것은 편법이다. 상임위원장이라는 감투를 나눈 결과 추태로 이어졌다. 국회법 제41조 5항은 상임위원장은 본회의 동의를 받아 사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항을 악용해 1년짜리 감투를 늘린 것이다. 한국당은 7개 상임위원장 가운데 무려 5개를 1년으로 쪼갰다. 민주당도 다르지 않다. 8개 상임위 중 3개다. 1년씩 쪼갰지만 본인이 사임하지 않는 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박순자 위원장이 ‘입원 농성’을 불사하면서까지 고집하는 이유다.
20대 국회에 설치된 상임위는 18개다. 국토교통위, 법사위, 예결특위, 정무위, 기획재정위는 흔히 말하는 노른자위다. 제1당, 2당, 3당은 이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격돌했다. 상임위원장은 회의 주관은 물론이고 예산 및 법안 심사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여기에 매월 1,000만원 가까운 활동비에다 특별한(?) 예우까지 받는다. 나아가 지역구 예산 확보에 우선권을 갖는다. 국토교통위는 예산 규모가 크고, 예결특위 위원장은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누구나 탐낸다. 이러니 3선만 되면 너도나도 위원장에 목을 맨다. 그런데 선정 방식은 정당을 가리지 않고 비민주적이다. 민주당은 선수(選數)와 나이가 우선이다. 전문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단지 누가 더 국회의원을 오래했고 나이가 많은지가 척도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만 못하다. 경선을 하더라도 계파 간 힘겨루기 끝에 나눠먹기 일쑤다.
여야가 특위 설치에 골몰하는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감투를 필요하기 때문이다. 당직과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 배분 과정에서 소외된 중진 의원들을 달랠 목적도 있다. 특위가 설치 목적대로 성과를 낸다면 마다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자리만 늘린 채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특위원장은 상임위원장과 마찬가지로 매월 활동비를 받는다. 매월 1,000만원에 달한다. 30개 특위면 연간 39억여 원이다. 이쯤해서 국회직 나눠먹기 관행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편법 쪼개기는 물론이고 불필요한 특위 설치까지 폭넓게 살펴야 한다. 그런데 한국당은 기강 운운하며 부끄러움을 모른다. 민주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도 관행이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다.
로마는 트라이엄프(triumph)라는 승전 행렬을 통해 제국을 결집시켰다. 이때 장군이 탄 마차를 끄는 노예에겐 중요한 임무가 있다. 장군에게 귓속말로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일이다. 오만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국회직 감투에 눈 먼 정치인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언젠가는 내려놓아야 할 자리다. 연연하는 모습은 추태다. 누구도 예외 없는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1년을 더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건은 민심을 살피고 제대로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