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책임질 사람이 결정하자
2019-07-22 08:56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3800여년 전 바빌론 광장의 비석에 새겨진 함무라비법의 중심 원칙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의사결정이나 선택의 결과에 따른 손실은 남에게 전가하고, 이득은 자신이 가져가는 세상을 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 스완>의 저자로 유명한 나심 탈레브의 지적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씨티은행 회장으로 10여년간 일하면서 1억2000만 달러가 넘는 보수를 챙겨간 밥 루빈이 씨티은행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되었는데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꼬집는다. 이처럼 자신은 이익만 챙기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사람의 유형에는 금융인만이 아니라 정치인, 고위 공무원, 대기업 경영자, 평론만 하는 학자, 컨설턴트 등 숱하게 많다고 한다.
자기책임성이란 관점에서 보면, 함무라비법이 존재하던 수천년 전의 고대사회보다 오늘날의 문명사회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나심 탈레브는 자신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자신의 핵심이익이 걸려 있는 사람이 직접 그 일에 관여해야 한다. 즉, 책임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오늘날 이 같은 주장이 적용되는 사례는 헤지펀드 시장에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헤지펀드 운용자들은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에 자기 재산의 상당 부분을 넣고 있다. 고객보다 자기 자신을 위험에 더 많이 노출시키고, 자신의 선택 결과에 따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책임성의 관점에서 볼 때 경제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이나 규제는 큰 문젯거리다. 정책이나 규제를 입안하는 정치인과 공무원은 국민의 대리인이다. 이들이 자신의 정책결정이나 선택에 따른 결과를 책임지는 경우는 드물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보완한다는 명분으로 더 많은 법과 규제를 양산하면서 더 깊고 광범위하게 개입하기도 한다. 잘못된 정책결정이나 선택에 따른 피해는 기업과 일반 국민들이 떠안게 된다. 우리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나 소득주도 성장정책도 자기책임성이란 관점에서 다시 한번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뒤이어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충격을 가져올 정책이 있다. 내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적용이 확대될 주 52시간 근무제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0.3%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올해까지는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에 국한되다 보니 그 파장은 크지 않다. 건설산업만 해도 300인 미만 중소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보니 현장의 혼란은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내년에는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기 때문에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산업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탄력근로제, 선택근로제, 재량근로제 등을 업종별로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최저임금 인상폭을 조절한 것처럼, 주 52시간 근무제 확대도 크게 고통받게 될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수많은 부작용과 경고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부적절한 경제정책이나 규제를 입안하고 강행한 의사결정자들에게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물을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시작했으면 한다.
원칙적으로 책임질 사람이 정책결정과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정치인과 공무원이라는 대리인들의 정책결정과 선택으로 피해를 보게 될 사람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