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강제징용 국내피해자는 보상 지급 안돼”...한·일 외교문제로 국내 피해자들 더 속앓이

2019-07-11 16:59
2012년 헌법재판소 결정 영향...90대 할아버지 외교부 상대 소송 각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우리 사법부의 판결이 이어져 일본의 경제보복이 이뤄지는 가운데, 강제징용 국외가 아닌 국내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법률적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법원의 판단이 나오고 있어 국내피해자들의 속앓이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 징병됐던 김영환 할아버지(96)가 외교부를 상대로 피해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이 이를 각하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수석부장판사 함상훈)는 11일 오후 2시 30분 김 할아버지가 외교부장관을 상대로 ‘국내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 지급’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적법하게 제기되지 않았거나 청구 내용이 법원의 판단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처분이다.

재판부는 “보상금을 달라는 소송은 외교부장관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각하 이유를 밝혔다.

이어 “보상을 신청하려면 원고 측에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국외 강제동원자만 위로금을 지급한 법률 조항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며 “저희도 딱한 면이 있는 건 아는데 행정 소송으로 구제해줄 방법이 없어서 각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할아버지는 1945년 3월 태평양전쟁 막바지 일본군에 끌려가 8·15 해방까지 5개월 동안 일본군 조선군관구 경기도 시흥 한 부대에서 강제로 군 생활했다.

해방 이후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국내에서 강제동원 된 피해자는 보상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 11월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소송을 각하하고,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판결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2년 7월 2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강모씨의 유가족이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는 지원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대해 낸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헌재는 “국외로 강제동원 되는 경우는 가족과 떨어져 낯선 이국 땅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괴로움이 국내로 강제동원 되는 경우 보다 크다는 점은 합리적인 추정으로 볼 수 있고, 강제동원 지역이 국외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지원금 수급여부를 결정한 것이 입법 재량을 벗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취지를 밝혔다.

다만 당시 박한철·이정미·김종대·송두환 헌법재판관은 “국가는 국내 강제동원 희생자들에 대해서도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하는 헌법상 의무가 인정된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도 이 같은 헌재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이며, 강제징용 국내 피해자들에 대한 입법 대안 제시 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행정법원 전경[사진=서울행정법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