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업계, 수제화 유통수수료 인하 요구에 ‘비지땀’

2019-07-12 05:12
공정위, 대형유통사 수수료율 실태조사 예고
현실화땐 하반기 실적 저조 불보듯…근본적 상생대책 주문

정부와 정치권이 대형 유통사를 상대로 수수료 인하 촉구에 나서면서, 백화점·홈쇼핑 업계의 고심이 깊다. 경기불황에 수수료 인하가 현실화 될 경우, 하반기에도 저조한 실적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 하지만 납품사에 대한 갑질 논란 등으로 마냥 외면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당정청 을지로 민생현안회의’에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 을지로위원회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형 유통사들의 수수료 인하 방안을 적극 실천해 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김 실장은 2009년 공정위의 수수료율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2010~2011년 대형 유통사들이 1100개 납품업체에 대해 수수료를 3~7% 낮췄던 선례를 언급하며 “적극 대응하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공정위는 수제화 산업 등에서 대형 유통업체의 판매수수료율 정보공개를 확대하고, 판매수수료율을 낮춘 업체에 혜택을 제공하는 등 자율적 유도를 하며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또 백화점 등이 할인행사에서 판촉비를 납품업체에 떠넘기는 관행 정도만 손 볼 계획이었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열린 '유통재벌 규탄 기자회견 및 해고 노동자 집단 삭발식'. [연합뉴스]

그러나 최근 서울 성수동제화노동자의 실태 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공정위는 직접 실태조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조만간 실무협의를 거쳐 잡화 등 납품사의 위상이 약한 제품군이 우선 대상이 될 전망이다.

앞서 제화노동자들은 구두업체 ‘탠디’ 본사 점거 시위 등을 통해 저임금과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공론화 했다. 지난 8일에는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동조합이 전경련회관 앞에서 “유통재벌의 과도한 유통수수료로 인해 제화노동자들이 죽고 있다”며 삭발까지 했다. 백화점 구두 한 켤레 값이 30만원이면 백화점이 유통수수료로 38%를 가져간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공정위와 제화노동자들의 압박에 한숨 깊다. 유통 산업도 업황이 부진한 만큼, 수수료율을 지금보다 더 낮추긴 힘들다는 입장이다.

대신 소비를 촉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현대백화점 천호점에서 성수동 수제화를 테마로 ‘메이드 인 성수’ 마켓이 대표적이다. 숙련된 성수동 제조장인들이 상품을 공급하고 현대백화점은 기획·마케팅을 지원했다.

A백화점 관계자는 ”주52시간, 워라밸 등으로 요즘 구두 대신 스니커즈가 대세라 구두산업 자체가 불황”이라면서 “10년 전부터 구두 관련 수수료율은 동결이었다. 수수료 1~2% 낮추는 걸로 업황 부진을 타개할 수 없다”며 근본적 대책을 주문했다. 

B백화점 관계자도 “탠디·미소페 등 원·하청 업체도 문제가 많은데 우리만 수수료율 제재를 가한다”며 볼멘소리다. 그는 “유통업계 전반이 침체된 상황인데 수수료를 더 깎으라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면서 “영세업자의 활로 개척을 위한 지원책, 일부 수수료 감면 등 상생하는 방향이 맞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소매유통업체 1000곳의 올 3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를 조사한 결과, 백화점은 매출에서 큰 비중인 패션잡화와 식품 부문이 부진해 업태별 집계에서 유일하게 전분기보다 3포인트 낮을 것으로 분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