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홍콩·대만문제로 시험대 오른 中 '일국양제'

2019-06-20 07:28
홍콩 반환 22주년…'일국1.5제'냐, '일국良제'냐 시험대
일국양제 둘러싼 모순…200만명 반중 시위로 나타나
"홍콩 일국양제는 실패"...대만서 수용불가론 확산

“일국양제 구상은 덩샤오핑의 천재적 발상이었다.”<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일국양제는 홍콩에서 실패했다.”<궈타이밍 대만 훙하이그룹 회장>


중국의 전 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1980년대 초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홍콩 반환 문제를 논의할 때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실험을 제안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一國)에 서로 다른 두 체제(兩制)가 병존하는 걸 말한다.

덩은 ‘하나의 중국’으로 통일이 된다면 중국과 홍콩이 각각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어떤 시스템을 유지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하나의 중국’이라는 통일 원칙의 수단으로 일국양제를 고안해 낸 것이다.

덩은 홍콩 반환 50주년이 되는 2047년까지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덕분에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홍콩이 사회주의화할 것이란 우려는 수그러들었다.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실험은 '묘수'로 평가받았다.

이후 2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중국은 일국양제 덕분에 홍콩이 정치적 자유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고 자찬하며 대만에게까지 일국양제 방식을 통한 통일을 요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최근 홍콩 시민 200만명이 반중(反中) 시위를 벌이는 등 일국양제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200만명 반중 시위...일국양제 모순
 

홍콩 시민들이 16일 '범죄인 인도 법안'(일명 송환법)의 완전 철폐를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오는 7월 1일로 반환 22주년을 맞는 홍콩과 중국은 지난 22년간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일국양제 방식으로 공존해왔다.

일국양제에 따라 중국은 홍콩의 주권을 되찾아 외교·국방을 책임지는 대신,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에 따라 행정·입법·사법의 자치권을 홍콩에 쥐어줬다.

일국양제 실험 속에서 홍콩 경제·사회는 안정적 발전을 구가했다. 중국은 홍콩을 경제개발 모델과 자본시장 개방 창구로 삼았고, 홍콩은 중국 대륙경제 발전 후광을 등에 업고 둘은 함께 발전해 왔다.

하지만 일국양제란 이름으로 홍콩과 중국이 공존해 오는 동안 물밑에서 쌓인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홍콩에서 벌어진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송환법 개정은 단순히 중국 본토·대만 등 홍콩과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홍콩인이 대만에서 살인 사건을 저지른 후 홍콩으로 도주했는데, 홍콩과 대만 간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어 살인죄로 처벌하지 못해 논란이 일어난 게 계기가 됐다. 단순히 여기까지만 보면 송환법 개정이 홍콩 시민 200만명의 반대 시위로 번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신에서 비롯됐다. 송환법 개정으로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 등 정치범의 중국 본토 송환이 현실화하면 홍콩의 정치적 자유가 위축되고 사법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사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송환법 없이도 홍콩의 반체제 인사들을 몰래 납치해 중국 본토로 잡아갔는데, 송환법이 개정되면 홍콩의 사법권이 중국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미국·영국 등 서방국에서도 송환법 개정이 홍콩 자치권을 훼손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가 된 것도 중국과 별개로 독립적 사법시스템과 시장 친화적인 비즈니스 환경이 뒷받침된 것인데,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이 세질수록 홍콩이 ‘중국화’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래픽=아주경제]


◆홍콩과 중국의 ‘동상이몽’

사실 홍콩과 중국이 일국양제 실험 속에서 가까워질수록 홍콩을 ‘중국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시도가 꾸준히 이어졌다.

홍콩에서는 2003년 중국에 대한 반역이나 외국 정치단체의 홍콩 내 정치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홍콩판 국가안보법', 2012년 중국에 대한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교육 의무화 등이 추진됐다. 이를 일국양제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본 홍콩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결국 무산됐지만, 중국 정부는 물론 홍콩 정부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다.

근본적 문제는 일국양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달랐다는 데 있었다. 중국은 '일국'에, 홍콩인들은 '양제'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다.

2014년 6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홍콩 특별행정구 일국양제 시행 백서’는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일국'에 중점을 뒀다. 백서에는 “홍콩 관할권은 전면적으로 중국 중앙정부가 보유한다”, “홍콩의 ‘고도의 자치권’은 중앙정부가 부여하는 만큼만 누릴 수 있으며 그 이상의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의 문구도 포함됐다. 이는 사실상 홍콩의 자유와 민주는 중국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실현된다는 걸 의미한다.

홍콩 범민주단체가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0여일간 벌인 ‘우산혁명’이 실패로 귀결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홍콩이라 해도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중국 정부가 체제에 위협이 되는 서구식 완전 자유 보통선거를 용납할 리 없었던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2017년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행사에서 "국가주권과 안보를 위협하고 중앙권력에 도전하는 그 어떤 행동, 홍콩을 이용해 본토에 침투하거나 파괴하려는 행동은 모두 '레드라인'을 건드리는 것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홍콩 내 반중 세력에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지난 2017년 7월 1일 홍콩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홍콩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펑리위안 여사. [사진=신화통신]


오늘날 홍콩 행정장관은 여전히 친중파 선거인단이 장악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사실상 중국 지도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되는 게 홍콩의 현실이다. 홍콩 정부 내각 각료 인선도 중국 지도부의 강한 통제를 받는다.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꼭두각시’라고 불리는 이유다. 일국양제는 사라지고 '일국1.5제'만 남았다고 홍콩 민주단체들은 자조한다.

◆"일국양제는 실패" 대만서 수용불가론 확산

사실 일국양제의 성공은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 실현 여부를 가늠할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중국이 꿈꾸는 대만 통일 방식도 일국양제이기 때문이다. 홍콩에서 일국양제가 실패하면 대만 통일의 꿈도 흔들릴 수 있다.

시 주석은 올 초 '대만 동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발표 40주년 기념 연설문에서 '통일'이란 단어만 46차례 언급했다. 그는 “체제의 차이는 통일의 장애물이 아니며, 분열의 핑계는 더더욱 아니다"며 “일국양제는 대만의 현실적 상황을 고려한 통일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홍콩의 일국양제 실험을 성공 사례로 들었다.

하지만 최근 홍콩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국양제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일국양제를 대만 통일에 적용하려던 중국은 난감한 상황이 됐다.

대만에서 일국양제에 대한 경계심도 부쩍 커졌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즉각 일국양제 수용 불가론을 들고 나오며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 차이 총통은 취임 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지 않으며 중국 본토와 갈등을 빚어왔다.

차기 대선주자로 유망한 ‘친중’ 성향의 대만 국민당 소속 궈타이밍(郭台銘 ) 훙하이그룹 회장,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까지 일국양제에 대한 거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궈 회장은 “홍콩에서 일국양제는 실패했다”고 말했고, 한 시장은 "일국양제를 거부한다. 중화민국과 자유민주의 태도를 굳건하게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내 반중 정서가 확산되며 '독립'이냐 '통일'이냐를 둘러싼 문제가 내년 1월 치를 총통선거의 최대 이슈로 부각된 모습이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사진=대만 총통부 홈페이지]


반중 정서 확산에 곤두박질쳤던 차이 총통의 지지율이 올 들어 급격히 오르고 있는 것도 중국으로선 골치 아픈 일이다. 대만 현지 매체들은 시 주석이 올 초 강조한 '대만 통일론'에 그가 단호하게 맞선 데 따른 반사효과라고 진단했다. 차이 총통은 가파른 지지율을 등에 업고 최근 민진당 경선에서 2020년 대선 후보로 발탁돼 연임에 도전한다. 그가 연임에 성공할 경우 양안(兩岸, 중국 본토와 대만) 갈등은 더욱 격화하고 중국의 대만 통일 꿈은 요원해질 수 있다.

◆'하나의 중국' 흔드는 美···고심 깊어진 中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차이잉원 행정부를 지원사격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렬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대만을 대중 압박 카드로 꺼내든 것이다. 지난해 미국 의회는 '대만여행법'을 통과시켜 미국·대만 고위층 교류를 허용한 데 이어 지난 5월엔 대만에 대한 주기적인 무기 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대만보증법'도 통과시켰다. 중국은 미국에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미국 국방부는 심지어 지난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에서 중국 주변 자유진영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을 기술하며 대만을 '국가'로 표현했다. 미국 정부가 미·중 수교 이후 대만을 국가로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폐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뒤따랐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고 미국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대중 압박이 무역통상뿐만 아니라 외교·군사·안보·과학기술·민간 학술 분야로까지 번지면서 '신냉전', '문명충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찌 보면 홍콩·대만 문제는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이 추구하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가치와 미국 등 서방국의 민주주의 가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충돌로 볼 수 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이라는 '일국양제’ 실험은 과연 덩이 약속한 대로 50년간 이어질까, 일국양제가 대만 통일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시행 22년을 맞은 일국양제가 '반쪽'짜리 '일국1.5제'로 전락할지, 아니면 더 나은 '일국양(良)제'로 발전할지 시험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