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지는 글로벌 경기 둔화… 안전자산에 '뭉칫돈'

2019-06-18 18:00
金·銀 거래량 급증… 달러·채권에도 투자심리 몰려
전문가들 "불확실성에 안전자산 선호 당분간 지속"

최근 주식이나 파생상품 같은 위험자산 대신 '안전자산'에 돈이 몰리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달러·채권' 선호 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통상 미국 경제전망이 불안해지면 금 수요가 늘어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산가들은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는 금과 달러 사모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또 다시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금은 녹슬지 않는 희귀 금속으로 모든 사람이 좋아하기에 달러처럼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된다. 더욱이 금은 안전자산으로 인식돼 위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과거 두 번의 위기 학습으로 알 수 있듯이 안전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경제 위기에도 수익을 창출했다.

최근 주식이나 파생상품 같은 위험자산 대신 '안전자산'에 돈이 몰리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달러·채권' 선호 심리가 강해졌다. 통상적으로 미국 경제전망이 불안해지면 금 수요가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안전자산에 대한 투자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내놨다. 침체 늪에 빠진 글로벌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고, 위험자산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설이 불거질 때마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끌었다. 10년 전인 2008년 리먼 사태 당시나 이후에도 최고의 재테크 자산은 금이었다. 2008년 이후 3년간 재테크 수익률을 살펴보면, 금 투자가 140% 가까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금펀드·주식형 펀드·주식·채권 순으로 뒤를 이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 불안, 특히 대외 경제가 불안할수록 자금이 안전자산에 몰리게 되는 경향이 발생한다"며 "금이나 달러, 미국 채권 등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서 거래되는 금 가격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1g당 금 가격이 5만1370원(1돈당 19만2637원)으로, 2014년 3월 시장이 개설된 이후 최고 금액이다. 이는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가결된 2016년 7월에 기록한 종전 최고가(5만910원)를 경신한 것으로 연초(4만6240원)보다 11.1% 뛰어오른 수치다.

금 거래량도 급증했다. 올 들어 KRX금시장의 일평균 거래량은 22.6㎏으로 지난해(19.5㎏)에 비해 15.9% 증가했다. 최근 3개월간 개인 투자자의 금 순매수량은 370㎏에 달했다. 국내 금 가격은 국제 금 가격에 원·달러 환율을 곱한 뒤 여타 수급 요인 등을 반영해 결정된다.

금뿐만 아니라 은 판매량도 늘고 있다. 한국금거래소는 지난달 10일 실버바(은괴)와 은화 판매량이 크게 늘면서 지난해 전체 판매량을 1분기 만에 뛰어 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판매된 실버바와 은화의 누적 판매량은 13톤으로 지난해 1년 판매량(8.8톤)을 48% 뛰어넘었다.

달러도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외화예금 중에서도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달러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달러는 최근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1200원대를 넘보고 있기 때문에 투자심리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달러가 쌀 때(원·달러 환율 하락) 달러 관련 금융상품에 돈이 몰리고, 달러가 비쌀 때 차익실현 매물이 많은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최근 국내외 경제적 불확실성이 큰 만큼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추가 상승에 베팅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경기 상황, 경제 여건을 보면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몰리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며 "우리나라 경제에 불확실성이 넓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채권의 인기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재차 부각될 가능성이 높아 채권 수요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채권형 펀드에만 올 들어 약 6조9594억원의 자금이 몰려들었다. 같은 기간 동안 국내 주식형 펀드에 1조원 가량이 빠져나간 것과 비교하면 크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달 초 국고채 3년물과 5년물 금리가 각각 전일보다 0.005%포인트, 0.001%포인트 떨어진 1.537%, 1.566%에 장을 마감했다. 채권은 금리와 가격이 반대로 움직이는데, 이같이 채권의 금리가 떨어진다는 건 수요가 그만큼 높아져 몸값이 크게 올라갔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장의 변동이 커지자 해외 채권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해외 채권(국채·회사채 포함) 매수금액은 294억25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89억6800만달러보다 100억달러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채권의 인기는 안전한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늘어났기 때문이다.

안전자산에 대한 우려감도 감지된다. 금·달러·채권에 자금이 쏠릴 경우 유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이나 달러 등 안전자산을 산다는 것은 결국 위험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유동성이 있어야 자금이 회전이 되는데 유동성이 줄어들 경우 기업들의 재정 상황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과 동남아 신흥국을 제외하고는 유럽과 일본의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며 "세계 경제가 회복이 돼야 수익률이 높은 투자처로 자금이 옮겨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을 비롯해 국내 경기가 좋지 않다 보니 기업들의 투자 환경이 나빠지고 글로벌 경쟁력도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며 "경제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경제 성장 궤도로 올라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