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신냉전 시대 한국의 전문 외교관은 어디에?
2019-06-17 05:00
격화되는 미·중 간의 무역 전쟁이 어느덧 경제 분야를 넘어 안보 등 일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거기에 러시아가 차츰 중국과 보조를 맞춰 가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새로운 냉전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1980년 대 말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끝났던 동서 간의 대립이 새로이 점화되는 배경에는 역시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있다. 무역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 관세 폭탄을 들고 나온 트럼프 행정부는 곧 그 전선을 기술 분야로 확산 시켰다. 5G 등 첨단 기술에서의 우위를 지키기 위해 중국 기업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세계 최대 무선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 제품에 대한 전 세계적인 보이콧을 주도하고 있다. 이어서 중국의 기술 도용을 막기 위해 중국 과학자 및 유학생들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고 있다.
보다 최근에는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이념의 문제로 비화시키고 있다. 범죄인의 중국 송환 법안에 반대하여 홍콩 시민 100만명 이상이 도심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자 미국이 이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중국 독재주의에 대한 폐단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배경에는 미국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 문제, 특히 인권 문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에 대해 극심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 정부에 있어 이는 심각한 체제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천안문 사태 30주기 때에도 서방의 따가운 비판을 받아 심기가 불편했던 중국으로서 향후 미국 및 서방에 대한 태도는 더욱 호전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악화되는 미·중 관계는 한국에 있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은 이 와중에 중간에 끼인 샌드위치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 여러 가지 문제에 있어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한국은 어쩌면 이보다 더욱 가혹한 처지에 놓이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 화웨이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한국 업체들이 그 상황에 놓였다. 미국 정부는 한국 기업들에 안보상의 위험을 이유로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요청하고 있다. 주한 미국 대사까지 전면에 나서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안보 면에서도 남중국해에서 베트남·필리핀과 영토 분쟁을 하며 실력행사를 일삼았고,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날을 세우면서 미국과 대립했다. 북한, 시리아, 이란 등 국제적인 안보 문제에서 미국과 자주 충돌했다. 시 주석의 이 같은 대담한 행보의 배경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무한한 자신감이다. 시 주석이 권력을 잡은 2012~2013년은 중국의 경제가 고도의 성장을 거듭한 반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덕이던 때이다. 이제 미국의 시대는 가고 중국의 시대가 왔다는 환상을 가질 만한 때였다.
그러나 현 중국 지도부의 공격적인 대외·대미정책은 중국에 큰 도전을 안겨주고 있다. 애국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는 손쉬운 공격거리가 되었고, 그로 인해 중국은 현재 수세에 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해 다른 지도자가 온다 해도 미국 내의 여론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기술 도용, 스파이 행위 혐의 등으로 미국 여론이 친중국으로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현재의 대립 국면은 유지되고 신냉전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