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부자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가
2019-06-16 13:04
- 세제는 조세정의가 아니라 통치논리가 좌우
정부는 지난 11일 가업상속공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대상 확대와 상속세율 인하는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대가 없는 부의 대물림을 막겠다는 정책 의지를 지지층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제스처로 풀이된다. 이는 정부가 결국 부자 증세로 재정확대의 재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한 재정 확대는 증세 외엔 방법이 없다. 세 부담을 현 세대에 지우느냐 다음 세대로 전가하느냐의 문제일 뿐 어떤 식으로든 증세는 불가피하다. 재정 확대는 결국 누구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게 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문재인 정부는 부자 증세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재정 확대를 기정사실화한 후 청와대와 여당 정책위에서 법인세 인상에 대한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100만원을 버는 사람이 10만원의 세금을 낸다면 10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얼마의 세금을 내야 하는가. 간단해 보이는 이 문제가 사실 조세정의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부자가 상대적으로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건 근대 이후 경제에선 언뜻 당연해 보이지만 뚜렷한 근거를 찾기 힘들다.
세금은 정부의 공적 서비스에 대한 대가, 즉 가격이다. 부자들이 국방·외교·치안 등 공적 서비스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가난한 동네의 치안이 더 불안한 경우가 많다. 과거 부자들은 사병을 키워 자력으로 치안을 해결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많은 천재들이 조세정의에 대한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건 공적 서비스 가격이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아인슈타인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소득세 문제라고 했다나.
역사적으로 세제는 조세정의가 아니라 당대 통치논리에 좌우됐다. 그리스·로마, 초기 이슬람 국가들은 대부분 사람의 머릿수에 따라 세금을 내는 인두세였고, 심지어 독일은 1930년대까지 시민세란 이름의 인두세가 유지됐다. 고대 로마의 귀족, 중세 유럽 영주들과 조선의 양반들은 단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1000만원을 버는 사람이 100만원(비례세) 또는 그 이상(누진세)을 세금으로 내는 것에 익숙한 현대 세제의 관점에서 보면 궁핍한 농노와 소작농들이 국가 재정을 책임졌다는 사실은 낯설다. 중세 영주와 양반은 왕권의 지지기반이었다. 왕권과 면세특혜 간의 거래였던 셈이다.
근대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세금보다 죽음'을 외치며 거리로 나간 민중은 왕정을 무너뜨렸다. 영주와 양반이 더 이상 왕권을 보장해주지 못했다. 왕정이 붕괴되면서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누진세 개념이 머리를 내밀었다. 근대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토지 보유에 따른 누진세 개념을 소개하면서 중세 조세제도는 문을 닫았다. 동양에선 식민지 시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에 누진세 개념의 소득세 제도의 기틀을 만들었다. 그는 최하층 계급이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부자 증세는 매우 유용한 증세 카드다. 세 부담을 소수에게 몰아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특히 진보 정부의 입장에선 지지기반인 서민중산층의 부담을 덜면서 재정확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석이조다.
소득 불균형 문제가 대부분 부자 증세의 강력한 명분으로 등장한다. 불균형이 심화돼 결국엔 0.01%의 슈퍼리치와 99.99%의 거지들만 남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로 생산은 넘쳐나지만, 그것을 살 수 있는 서민·중산층이 붕괴돼 대공황이 온다는 둠 시나리오는 그것이 현실화할 때까지 유효하다.
‘21세기 자본’의 저자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는 애덤 스미스보다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자본수익률이 노동수익률보다 높기 때문에 소득 불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둠 시나리오는 필연적으로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0.01%의 슈퍼리치들에게 최대 90%에 달하는 소득세를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99.99%의 사람들에게 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기본소득 개념이다. '파국보다 세금'이란 논리다.
이 같은 극단적 시나리오는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경제가 이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엔 대부분이 동의한다.
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가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 주장의 선봉에 선 것은 벌 만큼 벌었으니 베풀자는 선의의 발로가 아니다. 돈과 권력의 궁극엔 명예가 존재한다는 진실을 깨달아서도 아니다.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를 통찰한 결과다. 정확히 말하면 부자 증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활동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는 손익계산이다.
부자 증세가 효과를 내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가 같은 소득세율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소득세와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로의 엑소더스를 막을 수 없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도 세제개편안에서 부유세를 축소하고 자본소득에 대한 누진세를 폐지한 것은 미테랑 전 대통령의 부자 증세가 기업들의 탈(脫) 프랑스의 촉매제가 됐기 때문이다.
부자 증세는 기정사실이지만 시행과정은 상당히 정교해야 한다는 의미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말했듯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철저한 통치논리 앞에서 조세정의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부자들은 양자택일해야 한다. 기꺼이 세금을 더 낼지, 출국장 가는 길을 알아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