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컬래버레이션] 우포늪에서 따오기 실크로드를 꿈꾸다

2019-06-13 17:17
남북한·중국·일본 동북아 '에코경제'의 상징이 된 따오기


 

“따오기는 환경과 경제를 아우르는 에코경제의 상징이죠. 남북한-중국-일본-러시아를 이어주는 동북아 에코경제벨트…따오기 실크로드!”

우포늪지킴이, 환경운동가인 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은 내내 경제 얘기를 했다. 11일 오후 경남 창녕군 우포늪 따오기복원센터 앞 길바닥에 앉아 따오기가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그와 두런두런 ‘논두렁 대화’를 나눴다.

환경부·경상남도·창녕군이 5월 22일 창녕 우포늪 따오기복원센터에서 따오기 40마리를 야생 방사한 지 20일째인 날이었다. 새(조류) 사진의 권위자인 김연수 사진작가, 이인식 선생과의 협업, 컬래버레이션은 우포늪과 따오기 복원을 취재하고 칼럼을 쓰기 위해 시작했다. 환경과 자연을 논하려는 당초 의도에서 나아가 에코경제와 한·중·일 외교까지 ‘따오기 실크로드’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아름답고 큰 새 따오기, 그리고 우포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대규모 내륙 자연습지인 우포늪가에 자리한 따오기복원센터 근처에서 생전 처음 따오기를 만났다. 녀석들은 이제 막 자연에 적응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걸음걸이는 의젓했고, 자태는 늠름했다. 양 날개를 펴면 1m에 달할 정도인 대형 물새. 양 눈을 넓게 감싼 짙붉은 반점, 검고 길게 휘어진 부리, 흰 바탕에 회색, 갈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석양색’으로 불리는 몸통, 녀석들의 색은 오묘했다.
 

[지난달 23일 자연 방사된 따오기가 우포늪 숲속을 거닐고 있다. 사진=김연수 작가

이인식 선생과 얘기 중 11년째 따오기를 돌봐온 센터 따오기서식 담당자인 한영인씨가 다가온다. 그는 방사 이후 근처 습지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자식 같은’ 따오기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먹이를 챙겨 준다. 그는 “백로와 왜가리가 텃세를 부린다. 내가 돌아다녀야 따오기들이 먹이를 뺏기지 않는다”며 사람 좋게 웃었다.
 

[36Y 따오기. 사진=이승재 기자]

우포습지에 방사한 따오기 40마리 중 36Y는 가장 인기가 많으면서도 걱정을 많이 시키는 녀석이다. 애교가 철철 넘쳐 사람들이 와서 손을 내밀면 부리를 들이대는 스킨십도 마다 않는다. 김연수 작가는 “난생 처음 따옥 따옥 소리를 처음 들으니 가슴이 뛴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우포늪 하늘을 나는 따오기. 사진=김연수 작가]

사실 따오기는 20세기 초까지 한반도를 비롯해 중국, 일본, 러시아 극동 등 동아시아 지역의 습지와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종의 역사 6000만년,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조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낮에는 습지와 논에서 먹이를 구하고 밤에는 부근의 대나무나 소나무 숲에 머문다. 하지만 따오기는 1960년대 이후 동아시아의 급격한 산업화와 무분별한 남획, 무엇보다 농약 때문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따오기와 한중일 외교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한정동 작사, 윤극영 작곡 ‘따오기’는 192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에 곡을 붙인 동요다. 일제는 나라를 잃은 민족 감정을 노래했다면서 이 동요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그래서일까, 금지곡이 된 이후 따오기는 단순한 새가 아닌 다양한 상징이다. 경제와 정치, 외교에서 말이다.

중국은 따오기를 1979년 멸종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천하제일조(天下第一鳥) 즉 '하늘 아래 1번 새'를 대대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13개 현 2만여㎢에 걸쳐 수색을 벌인 끝에 1981년 5월 산시(陝西)성 양시엔(陽縣) 마을에 서식 중인 야생 따오기 7마리를 극적으로 발견했다. 이후 중국은 따오기 복원에 전력을 기울였고,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따오기 외교’를 시작했다.

1979년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뒤 사라졌던 한국의 따오기는 한중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정도로 중대사였다. 그 결과 중국은 2008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이 따오기 암수 한 쌍을, 2013년 12월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수컷 2마리를 추가로 기증했다. 이 중국산 따오기를 우리 따오기복원센터가 11년 만에 363마리로 늘렸고, 40마리를 자연으로 되돌린 거다.

일본의 경우는 더욱 남다르다. 따오기의 학명(닛포니아 니폰·Nipponia nippon)과 영어명(Japanese crested ibis)에 일본이 들어갈 정도니까. 중국은 우리보다 앞서 일본을 상대로 ‘따오기 외교’를 했다. 1999년 중국 장쩌민 주석이 일본을 국빈 방문했을 때 따오기 1쌍을 기증했고, 이후 일본은 니가타현(新潟縣) 사도섬 따오기 복원센터에서 인공부화, 자연방사에 성공했다.
 

[우포늪에서 따오기가 미꾸라지를 잡고 있다. 사진=김연수 작가]

◆따오기와 지역경제, 동아시아경제
이인식 선생의 첫 인상은 환경투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열려 있고, 깨어있다. 경제에서 그렇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일본, 코스타리카 등 세계 곳곳 ‘환경+경제’ 현장을 두루 다녔다. 무조건적인 보존이 아닌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환경과 자연의 소중함을 경제적으로 공유하고, 교육하는 생태경제, 다시 말해 에코경제를 굳게 믿는다.

따오기의 보금자리인 우포늪은 가시연꽃, 큰기러기 등 멸종위기 생물종 1500여 종이 살고 있는 동식물 천국이다. 1억4천만년의 신비를 간직한 태고의 습지인 이곳은 1998년 3월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고, 2011년 1월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지정됐다.
 

[우포늪 전경. 사진=이승재 기자]

지난 30여년 우포늪을 지키는 데 인생을 바친 그는 우포늪과 가까운 주남 저수지, 김해 화포천을 벨트로 묶어 ‘생태경제벨트’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동물원은 생태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친환경관광을 더 활성화시키고 대학캠퍼스 등 환경전문교육기관을 세우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상권이 산다. 환경으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인식 선생은 “그런데도 정부 내 환경과 경제의 ‘벽’이 너무나도 높다. 우포늪을 에코경제의 모델로 만들고 싶어도 서로 떠넘기기만 한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8월 한·중·일 3국이 복원 중인 따오기를 매개로 우호 교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따오기 국제포럼'을 열었다. 이에 앞서 5월 일본에서 개최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환경보호를 위한 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미·중무역전쟁 와중에 ‘미국이냐 중국이냐’ 물으며 중국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한·일관계는 1965년 6월 한·일협정으로 정상화된 이래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한·중·일 각국에서 모두 사랑받는 길조(吉鳥)인 따오기가 세 나라 간 신뢰와 우호 협력을 회복, 강화하는 평화의 새가 돼주길 바란다. 나아가 우포 따오기를 통한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를 잇는 따오기 실크로드의 큰 그림을 그려 본다.
 

[김연수 작가. 사진=김연수 페이스북]

P.S. 김연수 작가의 별명은 ‘김연새’다. 그만큼 새 사랑이 남다르다. 서울신문, 한겨레, 문화일보 등 40여년간 언론사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무수히 많은 ‘새 사진 특종’을 했다. 1면에 새 사진이 큼지막하게 나왔다면 십중팔구 그의 작품이다. 올해의 사진기자상, 대한민국과학문화상, 김용택 기자상도 받았다.

 

[이인식 우포자연학교장. 사진=이인식 페이스북]

이인식 선생은 대한민국 환경운동 1세대다. 학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인생 방향을 바꿔 환경운동가로 변신, 30년째 우포를 지켜왔다. 지금까지는 우포를 지켜왔지만 앞으로 10년 뒤 우포를 한국 에코경제의 롤모델로 만드는 꿈을 꾼다. 명함에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림을 꿈꾸는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대표, 우포자연학교 교장이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