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삼성·SK

2019-06-10 19:00
반도체 큰손 中 매출 높은데…美 제재 동참 압박
생산 차질 등 '제2의 사드 사태' 우려도

[사진=AP·연합뉴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제조업체들이 진퇴양난에 놓였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2년 만에 '사드(THAAD) 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 거래 제재 동참을 압박하고, 중국 정부는 이를 따를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중국 매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최악의 경우 현지 생산라인 가동마저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측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상황만 지켜보고 있다.

앞서 지난 4~5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양사를 포함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10여곳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미국 정부의 거래 금지 조치에 협조한다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높은 매출 비중·생산라인 차질 우려에 전전긍긍

두 회사가 이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전체 매출 가운데 중국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8조3335억원이다. 전체 매출 37조384억원의 22.5% 수준이다. SK하이닉스는 전체 매출 6조4203억원의 62.1%에 달하는 3조9895억원을 중국에서 거뒀다.

미국이 거래 제재 명단에 올린 화웨이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대형 고객사다. 삼성전자는 D램을,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화웨이에 공급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불황이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화웨이와의 관계 청산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제2의 사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2017년 롯데마트 전체 매장 99곳 가운데 87곳의 영업을 정지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롯데마트는 지난해 중국에서 완전 철수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시안과 우시에서 각각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반도체의 70%가량을 중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 4월 기존 생산라인을 확장한 5만8000㎡ 규모의 신공장 준공식까지 열었다. 그러나 롯데의 전례를 감안하면 현지 공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해법 없어 美·中 눈치만 보는 상황"

화웨이와 거래를 계속 유지하기도 어렵다. 미국이 유럽연합, 캐나다, 호주 등 우방 국가에 '반(反) 화웨이' 동참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도입 가능성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우회적으로 한국에 동참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일 "5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의 안보 영향을 우려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며 "한국이 동맹이자 우방으로서 잘 해결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양사는 공식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어느 나라의 입장을 따르더라도 막대한 손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의 한 고위 임원은 "미국과 중국이 힘을 겨루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편을 들기가 힘들다"며 "눈치만 보는 상황인데 해법이 없어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화웨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대기업들 또한 몸을 사리고 있다. 중국에 공장이 있는 만큼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드 보복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 사업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 내 판매량이 급감한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베이징1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기아차도 옌청 1공장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에서 대규모 공장을 운영 중인 LG화학·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대상에 한국 기업의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 포함되면서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는데, 애써 확보한 모멘텀에 무역갈등이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2017년 사드 사태 당시에도 전혀 상관이 없는 관광이나 화장품 분야까지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번 미·중 무역갈등 또한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