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잃어버린 10년’…‘금융위기’시절 주가로 회귀한 이유는

2019-06-05 07:17
민영화 후 R&D 비중 축소·높은 배당성향 지속…"재원 배분 문제"

[포스코 본사. 사진=포스코그룹]

[데일리동방] 포스코는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10위권(삼성전자 우선주 제외, SK텔레콤 포함) 내 유일하게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의 주가를 형성하고 있다. 가치투자 대가 워렌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도 극찬한 기업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비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세계 최고 철강 기업’이 저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래를 위한 투자 부족, ‘주인 없는 기업’이라는 복합적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발발한 지난 2008년 코스피 지수는 같은 해 5월 1901.13포인트에서 10월 892포인트(최저가 기준)까지 하락했다. 대다수 상장 기업 주가도 폭락하면서 시장은 공포에 빠졌다. ‘국민기업’ 포스코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기간 동안 주가는 60만7000원에서 23만4000원으로 급락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완화(QE)가 활발하게 추진되면서 이듬해인 2009년 증시는 하락의 일부를 회복했다. 포스코 또한 2019년 12월 61만8000원까지 오르며 그 저력을 보여줬다. 이후 주가는 지속 하락해 지난 2015년에는 15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24만원대로 회복했지만 금융위기 수준이다.

◇2008년 이후 포스코 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후 포스코는 대응책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아래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현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플랜텍, 성진지오텍 등 인수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2010년 포스코 영업이익률은 10%를 하회했다. 창사 이래 첫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2015년 4.1%에서 지난해 8.5%까지 회복했지만 과거 ‘영광의 시절’(2005년 23%)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위기를 핑계로 삼을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성장한 기업들을 보면 변명하기 어렵다.
 

[포스코(좌) 현대제철(우) 주가 추이(단위:원) 사진=한국거래소]

민영화 직후인 2001년부터 주가흐름을 살펴보면 2004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경제 호황에 힘입어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 발발 전까지 무려 7배나 올랐다. 흥미로운 점은 이 기간 동안 비교 대상 업체라 할 수 있는 현대제철 주가의 20배 상승이다.

현대제철 역시 금융위기 여파로 주가가 반토막 났다. 그러나 현대·기아차의 매출 확대 등에 힘입어 2011년에는 2001년 대비 50배 가까이 올랐다.

최근 수년간 포스코와 현대제철 모두 업계 불황 여파로 주가는 하락세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현대제철 주가는 금융위기 당시 대비 2배가량 높다. 2001년부터 최근까지 누적수익률을 비교해도 포스코는 3배 수준이며 현대제철은 10배가 넘는다.

◇연구개발비,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포스코가 무리한 인수합병(M&A)을 시도해 수익성과 주가가 하락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이 가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민영화 이후 위기 발발 전까지 포스코의 주가는 더 큰 폭으로 올랐어야 한다. 만약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국내 주요 기관들의 연구와 논문 등에 따르면 연구개발(R&D) 비용은 기업의 사후 수익창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지난 2002년 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Korea R&D Scoreboard’는 R&D 투자비율(연구개발집약도)이 높을수록 매출 증가율, 영업이익률, 종업원 부가가치, 주가수익률 등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고투자 기업들은 저투자 기업 대비 영업이익률과 매출증가율이 최고 2.5배, 9.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수익률도 고투자 기업 상위 15개의 누적 수익률이 코스피200 기업의 주가수익률보다 1.6배 높았다.

‘R&D 투자와 기업성과’(LG경제연구원, 2004년)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으로 10개 그룹을 나눠 분석한 결과를 담고 있다.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의 평균 매출액 증가율(중앙값 기준)은 14%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반면 연구개발비 비중이 낮을수록 매출액증가율도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일부 기업은 과도한 지출도 영업이익 감소에 이어 순이익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은 기업은 주가수익비율(PER)도 높아졌다.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해당 기업 주주들은 경영자들이 단기성과보다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행동으로 인식한다는 해석이다.

한편 ‘외국인투자가 배당 및 R&D 투자에 미치는 영향’(한국경제연구원, 2006년)은 외국인 지분 증가가 배당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만 R&D 투자 감소와는 관련이 없다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R&D와 기업가치 관련 좀 더 구체적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전에는 연구개발 효율성, 연구개발비중 등이 주가에 대한 설명력을 갖는다고 했지만 ‘한국 유가증권시장에서의 연구개발요인 분석’(정제연, 2017년에서) 연구개발효율성, 연구개발비중은 주가와의 유의미한 관계가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다만 연구개발비중확대 변수만이 설명력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절대비중 혹은 규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즉 연구개발비 규모와 비중을 전기 대비 유의미하게 확대한 기업의 주가가 그 다음해 상승한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기술경쟁이 심화되면서 R&D 역할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투자자들은 R&D지출과 정보를 더 세부적으로 조사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포스코 주가, R&D와 배당 ‘아킬레스건’?

포스코는 현대제철 대비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항상 높았다. 규모 또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2018년 기준 포스코의 연구개발비는 5848억원, 현대제철은 1191억원이다.

그러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과 규모 증가율은 현대제철이 압도적이다.

지난 2000년 포스코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15%에서 이듬해 1.87%로 낮아졌다. 2006년에는 0.99%까지 줄었다. 이후 등락을 반복했지만 작년에는 0.9% 수준에 그쳤다.
 

[포스코 현대제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단위:%) 사진=에프엔가이드]

현대제철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2000년 0.24%에 불과했으나 2002년 0.03%를 저점으로 2017년에는 0.78%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0.57%로 낮아졌다.

전년대비 연구개발비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시기는 포스코가 2004년, 2007년, 2008년, 2010년, 2011년, 2014년, 2018년이다. 현대제철은 2001년, 2003년, 2004년, 2007년, 2008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5년, 2016년, 2017년이다.

두 기업은 배당성향에서도 차이가 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배당성향은 2000년 각각 12.46%, 15.10%였다. 이후 현대제철은 한 자릿수로 낮아졌고 포스코는 두자릿수를 지속해 2013년에는 46.72%까지 치솟았다. 심지어 포스코는 지난 2015년 당기순익 적자에도 배당을 했다.
 

[포스코 현대제철 배당성향 추이(2015년 포스코 순익 적자로 0 표기, 단위%) 사진=에프엔가이드 ]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주주환원,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설정한 만큼 배당 증가는 예고됐던 사안”이라며 “연구개발비 비중을 줄인 것은 미래 가치 제고 부문에서 아쉬운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배당과 투자 중 어느 것이 옳다는 정답은 없지만 포스코가 독점 기업이 아닌 만큼 그 규모에 맞는 과감한 연구개발에 힘썼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종은 다르지만 그 대표적인 예가 애플이다. 지난 2016년 초 애플은 아이폰 매출 비중 하락이 뚜렷해지는 상황에서 연구개발비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경쟁자들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당시 애플 주가는 100달러를 하회하는 등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지난 2018년에는 200달러를 훌쩍 넘었다.

최근 애플 주가가 부진한 이유로는 배당확대 등이 꼽힌다. IT업계 신성장 동력 꼽히는 인공지능(AI), 빅테이터 분야에서 구글, 아마존 등은 배당을 하지 않고 투자에 활용하고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포스코 입장에서 배당성향 축소는 주주구조상 반발을 살 수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경쟁력 제고를 위해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는 만큼 주주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개발에 소요되는 비용이 무조건 기업의 가치제고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방어책이 필요하다”며 “무조건 배당을 하기보단 주주와 소통을 통해 재원을 적재적소에 배분하는 것이 가치하락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덧붙였다.